[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6부:세계는 이미 빠르게 변화고 있다(1)

일본에서 초고속인터넷 붐을 일으킨 소프트뱅크가 IPTV를 통한 통·방 융합 시장 주도를 노리고 있다. 사진은 ADSL 붐 일구기에 나선 손정의 소프트뱅크사장.
일본에서 초고속인터넷 붐을 일으킨 소프트뱅크가 IPTV를 통한 통·방 융합 시장 주도를 노리고 있다. 사진은 ADSL 붐 일구기에 나선 손정의 소프트뱅크사장.

(1)일본(상)

 일본의 통신·방송 정책을 주관하는 총무성은 도쿄 중심가인 치요다구의 중앙합동청사에 위치해있다. 일본 통·방 정책의 특징은 총무성이란 기관 아래 이질적인 두 산업을 하나로 묶었다는데 있다. 일본은 최소한 통·방 융합 정책에 있어선 한국 보다 한발 앞선 선험국인 셈이다. 그런 일본이 최근 통·방 융합 시장 도래에 따라, 정부 조직 개편을 추진 중이다. 오히려 IT강국이라는 한국보다 반걸음 앞에서 통·방 융합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두번에 걸쳐 일본의 통방정책과 시장 현황을 짚어본다.

◇일본의 통방정책=일본은 지난 52년부터 독임제 정부부처인 우정성이 방송 정책 및 규제를 담당해왔다. 본래 ‘태평양전쟁시 국책방송’의 교훈이 있어 미 점령기엔 ‘전파감리위원회’가 총리부의 외국에 설치했지만 이를 해체한 것. 또 90년대 후반 일본 중앙부처조직 개편 논의에서 별도의 독립행정위원회인 ‘통신방송위원회’ 설립 논의도 제기됐지만 역시 철회됐다. 당시 일본의 논리는 △의원내각제 정치제도상 독립행정위가 맞지 않고 △방송·통신 분야는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 국가 전략 차원에서 대처가 요구되기 때문에 독립성을 지닌 합의제 행정위는 적절치 않다는 것.

현재의 총무성은 2001년 우정성 해체후 신설돼, 현재는 통신·방송 정책은 정보통신정책국과 총합통신기반국에서 관할한다. 나눠보자면 종앙합동청사 10층에 있는 총합통신기반국은 NTT, KDDI, 소프트뱅크 등 통신사업자를, 11층의 정보통식정책국엔 방송정책과, 방송기술과, 지상파방송과, 위성방송과, 지역방송과 등 5개과가 방송 정책을 이끈다.

총무성 정보통신정책국 종합정책과의 야마자키 료지 과장보좌는 “10층과 11층간 통신과 방송사업자를 관할해 입장이 다를 때도 있다”며 웃었다. 그는 “통·방 융합 산업에 대한 부분은 정보통신정책국의 종합정책과와 정보통신정책과에서 방송과는 다른 융합서비스 정책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산업별로 조직이 나눠져있지만 향후 하나로 묶은 ‘과’도 나타날 것이란 설명이다.

◇방송→통신, 통신→방송 벽 낮춰=총무성은 방송사업자의 통신 진출은 물론, 통신사업자의 방송시장 진출에도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사례로 케이블TV 사업자의 전화시장 진출과 통신사업자의 IPTV 시장 진입을 들 수 있다.

일본의 1위 케이블TV 사업자인 제이콤은 전화 시장에서도 떠오르는 강자다. 이미 2000년대초 교환기 방식의 고정전화 시장에 뛰어들어 2002년 35만 가구를 시작으로 올 3월엔 100만 가입 가구를 넘어선 것. 제이콤의 가토 토루 이사는 “가격 우위성을 가지고 교환기 방식 전화시장에 안착했으며 최근엔 VoIP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지금까지 교환기 방식 전화시장에 진출한 케이블TV 사업자는 없다.

통신사업자의 방송시장 진입을 위해 2001년 전기통신역무이용방송법을 만들어 이듬해부터 적용했다.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야후BB가 2002년 7월 이에 기반해 유선방송사업자로 등록했다. 현재 ‘히카리플러스TV’ ‘BBTV’ 등 IPTV를 포함해 전기통신역무이용방송사업자는 56개에 이른다. 국내에선 올해초 방송위원회가 제시한 ‘통신망 이용 방송서비스’가 유사한 개념인 셈. 그러나 방송위가 이를 방송에 상응하는 진입 장벽을 제시할 움직임인데 반해 총무성은 반대다.

야마자키 과장보좌는 “방송은 무선국 면허를 받는 규제가 강한 구역이지만 통신은 신호가 도착만하면 되는 산업군”이라며 “중간지역인 곳은 등록제로 한게 총무성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56개 사업자 모두 총무성의 ‘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아니라, ‘등록’을 하고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독임제 통합조직의 장단점=총무성은 ‘방송이든 통신이든 결국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이고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를 고민하는게 우리 몫’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서비스와 방송서비스용 주파수를 유연하게 배치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란 것.

또 동일한 사업자가 통신사업도 하면서 방송사업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 이런 사업자를 규제하는데 통합조직이 유리하다. 이를테면 일본의 이동통신사업자인 KDDI는 최근 FTTH망에 기반한 IPTV 시장에 진출했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초고속인터넷과 전화시장에 발을 담근지 오래다. 이들 사업자들을 규제할 경우 통합조직인 총무성이 힘을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독임제 행정조직이 방송을 규제하는데 대한 단점도 지적된다.

야마자키 과장보좌는 “역시 방송분야의 특수성인 표현의 자유인데 이를 억제할 행정 행위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나 싶다”고 완곡한 표현을 썼다.

 도쿄(일본)=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

◆일본 통방정책의 지향점

 일본은 지난달 통신·방송 융합 관련 보고서를 냈다. 주체는 총무대신이 만든 사적인 자문기구인 ‘통신·방송 구조개혁 간담회’다. 총무성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향후 총무대신의 정책판단에 도움을 줄 것이며 7월께 정부 및 자민당과의 협의를 거쳐, 내각 방침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일본의 향후 통·방 정책 지향점’인 셈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11년을 앞두고 통신·방송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 중이다. 보고서는 △2010년 통신인프라의 브로드밴드화 완료 △2011년 7월 디지털 지상파방송의 디지털화 완료 등 통신·방송 인프라 측면에서의 ‘완전디지털 원년’을 이룰것으로 전망하고 2011년 이런 인프라 위에서 최고의 통신·방송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선 5년이란 시간이 있는 지금 통신·방송 구조개혁을 앞서 이뤄야한다는 것.

우선 통·방 융합을 진전시키기 위한 환경 정비다. 현재 일본의 IPTV는 저작권법상 통신서비스로 구분돼있어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이 지적된다. 따라서 저작권법상 방송으로 재정립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또 IPTV의 발전 등 여러형태의 통·방 융합 서비스가 쉽게 출현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정비를 해야한다. 여기에 일본의 방송기술을 이끄는 NHK와 통신기술을 주도하는 NTT간 표준화를 포함한 기술 정비도 포함된다. 또한 현재 통신과 방송 영역에 9개에 달하는 법률이 있는데 이에 대한 정비도 지적했다.

주목할 것은 보고서가 ‘전송-플랫폼-콘텐츠’로 구분한 법체계를 지향해야한다고 밝힌 대목. 한국에선 정통부가 2분류, 방송위가 3분류를 제시한 가운데 보고서는 방송위원회 방안에 가까운 것이다. NTT의 데구치 부장은 “보고서의 내용은 아직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즉, 사업자를 3분류로 명확하게 나눈다는 뜻이 아니라 단순히 한 사업자가 하더라도 사업부서를 분류하는 수준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또 △매스미디어 집중배제원칙의 완화 △기존에 할당된 주파수 대역의 유효한 이용 촉진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IP멀티캐스트에 의한 재송신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용 주파수 대역의 유효 이용 △콘텐츠의 유통환경 개선을 통한 방송사업의 자유로운 사업전개 촉진 등을 주요 개선 사항으로 꼽았다.

◆NTT 정책은?

 일본 최대 통신사업자인 NTT는 총무성의 통신·방송 정책과는 다소 거리를 둔다. 왜냐면 NTT는 본래 국영기업이며 민영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NTT법으로 규제받기 때문이다.

현재 총무성의 전기통신역무이용방송법 제정으로, NTT의 경쟁상대인 KDDI, 소프트뱅크 등은 자유롭게 IPTV 시장에 진입해 있다. 그러나 NTT는 여전히 발이 묶인 상태다. NTT는 원칙적으로 방송을 해선 안되는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NTT에서 방송연계(영상송신) 사업을 담당하는 데구치 슈이치 중기경영전략추진실 서비스전략담당부장은 “NTT는 네트워크 회사로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미디어사업자와는 제휴 파트너로서 수익모델을 만들어나갈 따름이란 구상이다. 그는 “향후에도 NTT가 (무리하게) 인수합병 등을 통해 방송시장에 들어갈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법률적으로도 안되지만 NTT그룹 내부 전략으로서도 선택치 않는다는 것. NTT가 ‘미디어사업자’로서 위상 변화보다는 네트워크 회사로서 가입자들을 확대하고 지키는 방안을 고민하는 셈이다. 반면 KDDI 등과의 경쟁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KDDI는 2위 이동통신사로서 NTT그룹 계열의 NTT도코모를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엔 전력계 회사와의 연합전선을 구축해 NTT에 도전 중이다. 일본의 FTTH망은 NTT와 전력회사들이 대부분 보유 중이며 향후에도 이들만이 추가 투자 여력이 강하다. KDDI는 미디어사업자로서 전력회사의 FTTH망을 활용해 IPTV 보급에 마케팅 역량을 강화 중이다.

아직은 10만 가입자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또한 케이블TV사업자들이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방송+초고속인터넷+전화)를 제공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 중이다. 데구치 부장은 “앞으로 도시지역에서 펼쳐질 TPS 경쟁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일본)=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