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방송위원회의 구성이 벌써 몇주 째 오늘이다, 내일이다를 반복하며 맴돌고 있다. 3기는 2기의 임기가 만료된 지난 5월에 이미 출범했어야 했다. 그러던 게 지방선거와 국회 일정 등으로 주춤거리더니 급기야는 후보 가운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자격시비로 진통을 겪기에 이르렀다.
다행히도 11일쯤이면 방송위원 9인의 선임을 끝내고 대통령이 임명장까지 주는 일정이 잡혀 있다고 한다. 하루 상관이어서 일단 결과를 기다려 볼 일이지만 사람들은 이제 누가 새 방송위원에 낙점이 되는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따지고 보면 장관급이 수장인 국가 기구 가운데 방송위만큼이나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곳도 없다. 물론 방송위원회의 말마따나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설치됐다. ‘방송에 관한 헌법’이라는 방송법 제1조에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명문화돼 있다. 하지만 9인으로 이뤄지는 방송위는 그 구성 비율부터 철저히 정치적이다. 청와대 몫 3인, 여당 몫 3인, 야당 몫 3인 식의 인적 구성은 차라리 정파적이라는 인상까지 들 정도다. 해당 몫의 방송위원이 결정적인 순간에 추천자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할 개연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인선 막판에 일부 후보의 정치적 성향을 들춰낸 폭로가 난무했다. ‘누구는 노무현캠프 특보였고 누구는 방송사 내부문건을 야당에 유출했으며 어떤 이는 ‘일개 비서관’의 정실인사, 보은인사였다’고 한다. 방송위원을 ‘수발’해야 할 방송위 사무처 노조가 특정 후보에 대한 기피성명을 내기도 했다. 재벌신문사 출신이 방송위원이 되면 방송법과 신문법을 고쳐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자고 덤빌 가능성이 높다는 대목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그런 자극성에 민감한 게 또 여론일 터다. 어떤 이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훼손시킬 장본인으로 지목돼 낙마했고 어떤 이는 살아남아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낙마한 이들이 모두 ‘꽁지 빠진 새’ 격의 청와대 몫이었던 반면에, 생존한 이는 모두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야당 몫이었다는 점이다. 독립 투쟁이 오히려 정파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누군가 자꾸 방송위원회의 정체성에 돌을 던지거나, 자꾸만 겉도는 느낌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급격한 기술의 발달이 방송의 개념이나 범주를 바꾸어 놓은 지 오래다. 이른바 방송과 통신의 융합 흐름은 이미 시대적·역사적 소명이 돼버렸다. 이런 마당에 방송위원의 법적 지위가 교과적인 논리에 얽매여 운신의 폭이 제한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번 3기 후보 검증 과정에서도 폭로와 자격시비는 난무했지만 방송위원으로서 대표성이나 전문성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은 없었다. 1400만 가입자를 보유한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분야 인사나 방·통 융합을 겨냥한 통신 전문가의 부재가 그것이다. 수용자(시청자)나 주변환경은 이미 언덕에 올라 또 다른 지평선을 바라보는 판국에 방송계에서는 언덕이 있는지조차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방송의 미래를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다.
3기 방송위원회는 2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희망사항이었을까. 견제는 견제로 끝나야 한다. 누가 더 자기 밥그릇을 잘 지켜줄까 하는 것에 집착하는 일은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일 뿐이다. 어쨌거나 3기 방송위는 조만간 출범할 것이다.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제 누구나 그런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 변하는데 왜 방송계만 제자리인가’라는 강호의 지적이 새삼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서현진 IT산업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