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등위) 설립 문제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등위는 업계의 숙원사업이었던 만큼 기대도 컸지만 최근 각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기존 산업 육성을 위해 게임등위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게임산업 육성 로드맵은 크게 수정될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업계는 문화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명확한 방향을 잡고 난 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야 원칙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협회 한 관계자는 “그동안 업계는 게임등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기존 방침에서 급선회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며 “그렇다면 정부가 왜 게임등위를 만들려 하는지 최근에는 그 속내조차 모를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6일 문화부는 중소기업중앙회 회관에서 ‘게임물등급위원회 및 등급 분류 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가졌다. 문화부는 이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공청회에서 주로 다뤄진 사안은 ▲게임등위 조직구성안 ▲등급분류 규정과 절차 ▲사행성 기준 등이다.게임등위 조직구성에 대해 대부분의 발제자들은 조직의 방대함과 함께 등급위원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경우 영화와 음반·게임물 등의 심의를 하고 있지만 64명인데 반해 게임등위는 게임 심의만 담당하는데도 불구 61명에 달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화부가 이번 조직구성의 특징으로 꼽고 있는 감사팀과 윤리위원회 구성에 대해 일부에서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또한 등급위원의 권한이 막강해 영등위보다 더 큰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등급위원 선정문제도 도마위에 올랐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사후관리를 직접 문화부가 담당할 수 있도록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재문 어뮤즈먼트 부회장은 “감사팀이나 윤리위원회가 별도로 신설돼 업무 중첩과 조직 비대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심의지원팀을 기술심의로 대체하는 등의 조직 슬림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부 조현래 과장은 “감사팀과 윤리위원회는 게임등위 내에서 롤이 분담돼 있고 조직 구성은 아직 예산이 확정되지 않은 가안이기 때문에 축소는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전문성 확보를 위해 신설된 전문위원 수를 줄이기 보다는 사무국 인원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겠다”고 말했다.
조과장은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등급위원 선정에 대해서도 “등급위원의 권한이 막강한 만큼 투명한 방법으로 선출될 것이고 정부의 입김이 작용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심의규정과 절차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시민단체들은 심의규정과 절차에 있어 청소년 보호가 너무 등한시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보완책을 요구했다.
발제자로 나선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은 “심의위원의 자의적 심의로 인한 폐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방치하고 있으며 세부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고 “게임등위 사명과 핵심 가치는 청소년보호인데 이번 규정과 절차에서는 이러한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원재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등급분류의 세부기준을 마련하는데 있어 모호하고 부적절한 개념을 사용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의적 심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며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현래 과장은 “심의 기준을 명확히 만들어도 일장일단이 있을 수 있다”며 “아무리 명확한 기준을 만든다 해도 자의적 심의는 필수이기 때문에 차라리 현 규정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12세이용가와 15세 이용가 등급에 대해서도 “내용표시제 등을 도입한 것은 청소년 보호를 위한 조치"라면서 “그러나 등급 신설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고민해 보겠다”고 이조항의 수정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이번 공청회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것은 사행성 기준이었다. 아케이드 업계는 시행규칙에서 수정안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정부는 1시간 동안 최대 제공할 수 있는 경품한도액을 10만원으로 축소키로 했는데, 이는 지난 달 발표한 기본안(20만원)에 비해 무려 100% 줄인 규모다.
아케이드 업계는 “문화부가 아케이드 산업을 말살하려는 의도”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와함께 온라인게임 사행성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강력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컴퓨터중앙회 김민석 회장은 “온라인 웹보드 게임인 고스톱, 포카, 룰라 등에 대한 사행성 기준이 너무 미약하다”며 “사행성 게임인만큼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대해 게임산업협회 최승훈 정책실장은 “온라인 웹보드 게임은 사행성 게임이 아니며 단지 놀이게임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현재 업계에서 자정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현재 기준만으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현래 과장은 “(온라인 웹보드 게임이)사행성 게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일각에서는 사행성PC방 단속과 온라인게임업체의 문제점등을 연동해 생각하는 모양이나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일련의 정부의 방침을 소개했다.
<안희찬기자 chani7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