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본(하)
일본 통·방 융합 시장을 이끄는 주체는 NTT·KDDI·소프트뱅크 등 통신사업자진영과 제이콤 등 케이블TV사업자, NHK·아사히TV·닛폰TV 등 지상파방송사들이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기반 역량을 바탕으로 신규 서비스 시장에서 주도권 확보를 노리고 있다.
NTT는 일본내 최대 네트워크 보유자라는 강점을 살려, 오는 2010년 FTTH 가입자 3000만 세대 계획을 발표한 상황이다. NHK는 일본 휴대이동방송인 원세그를 주도하며 지상파의 맡형으로 통신사업자와 힘의 균형을 맞추는 중심추다. J콤은 상대적으로 약세로 꼽히는 케이블TV 진영이 발빠른 시장 장악 전략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다.
◆NTT
오카무라 이치로씨는 NTT 중기경영전략추진실 서비스전략담당부장이다. ‘NTT의 IPTV 전략’을 책임져야할 자리다. 오카무라 부장은 일단 NTT가 ‘네트워크 사업자’이기 때문에 미디어 그룹 지향으로 갈 수 없다는 대목에서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즉, 방송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거나 이를 받아서 방송하는 사업자 영역으로의 진출은 없는 셈이다. 그는 “한국의 KT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며 “KT의 미디어 도전 전략도 값어치가 있지만 우린 네트워크 사업자로도 IPTV사업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카무라 부장은 NTT의 방송 전략을 둘로 나눈다. 이미 위성방송사업자인 스카이퍼펙의 100% 자회사인 옵티캐스트와 진행중인 ‘방송규격전송(RF전송)’과 최근 일부 시장 진입한 ‘IP규격 전송’이다. 두 모델 모두 NTT는 망을 제공하며 방송사업자는 파트너에게 맡긴다.
RF전송은 말그대로 방송규격 신호인 RF를 NTT가 보유한 FTTH망을 통해 제공하는 형태다. 역무이용방송사업자인 옵티캐스트와 진행중인 서비스는 기존 방송사인 지상파방송사, 방송위성(BS, 아날로그·디지털방송 포함), 상업위성(스카이퍼펙 등이 제공중인 상업위성방송) 등으로부터 방송신호를 지상의 방송센터에서 받아 이를 고스란히 공동주택 등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상파방송과 BS와는 재송신 동의를 받았으며 CS에선 총180채널 중 30∼60채널을 계약해 확보했다.
RF가 의미하듯이 기존 방송신호를 그대로 보낸다. NTT의 역할은 옵티캐스트가 방송채널을 방송센터에서 모두 받으면 이를 NTT의 망전송 설비와 FTTH를 통해 가정에 공급하는 네트워크사업자다. 말하자면 지상파방송사 등은 콘텐츠 제공자, 옵티캐스트는 순수한 플랫폼 전용 사업자, NTT는 네트워크 제공사업자인 셈이다. NTT측은 이를 ‘동영상통신망서비스’로 지칭했다.
지난 2004년 2월 시작해서 현재 5만세대에 그치며 시장을 변화시킬 힘으론 성장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RF방송신호인 만큼 변조방식이 중요한데 이는 케이블TV의 디지털변조방식인 64QAM를 채택했다. QAM은 국내 디지털 케이블TV 규격이기도 하다.
‘IP규격전송’은 국내 KT가 준비 중인 IPTV와 거의 똑같다. 방송신호가 아닌 IP패킷을 사용한다. NTT는 자회사인 프라라(역무이용방송사업자)와 계약해 자회사가 확보한 방송채널을 IP패킷 신호로 일반 가정에 유료방송으로 제공한다. 서비스명은 ‘온라인TV’다. 같은 망을 통해 VOD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NTT의 망을 통해 유료방송과 각종 부가서비스를 제공받는 셈이다. NTT측도 IP규격전송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문제는 지상파방송사의 재송신 부분이다. NHK 등지상파방송국들은 아직 여러 이유를 들어 재송신을 허용치 않는 상황이다.
오카무라 부장은 “재송신 문제는 검토 중으로, 2008년께 HD로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 규제기관인 총무성은 지난해 ‘디지털시대의 지상파방송 난시청 문제를 해소키 위해 IPTV 도입해야한다’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 올해 중 압축전송기술인 MPEG4 AVC(일명 H.264)를 실험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IPTV는 지상파 재송신 문제 등이 걸림돌이 돼 아직 시장에서 고전 중이다. NTT의 ‘온라인TV’를 비롯해 소프트뱅크의 BBTV, KDDI의 히카리TV 등은 모두 10만 가입자 이하로서 전체를 합쳐도 20만이 안될 것이란게 일본 업계의 추정치다.
◆NHK
NHK는 불투명한 통·방 융합 시대에 여전한 강자로 남기 위해 신규 융합서비스 도입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3년 데이터방송 시작과 2004년 5월엔 인터넷과 지상파 데이터방송간 연결시켜 리턴패스를 확립시킨 것.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6월에야 본방송을 시작했을 따름이다. 그나마도 리턴패스 확보가 정립되지 못한데다, 현재로선 별도 데이터방송용 셋톱박스가 필요하다. NHK가 주도한 일본의 지상파 데이터방송은 초기부터 일본내 가전제조업체와 보조를 맞춰 표준을 함께 만들었다.
NHK의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를 총괄 담당하는 와다 이쿠오 종합기획실 담당국장은 “현재 일본에서 시판되는 모든 TV는 데이터방송의 리턴패스용으로 사용할 포트가 있어 소비자들이 원하면 인터넷선과 바로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식대로 말하면 ‘지상파 데이터방송 내장형 TV’ 시대를 이미 2년전에 일군 셈이다. 우리 지상파방송사가 2004년부터 ‘곧 상용화’란 딱지를 붙였다 뗏기를 예닐곱번하는 사이에 그들은 진도를 나갔다.
한국은 이제부터 리턴패스를 고민하는 시점인데 NHK의 고민은 본질적인데 있다.
와다 국장은 “시청자들에게 보고싶다는 매력적인 데이터방송 콘텐츠를 제공해야하는데 이게 어렵다”며 “현재 DTV를 구매한 일반인이 인터넷선을 연결한 경우는 10% 미만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상파방송사가 콘텐츠 제공업체로서 통·방 융합 시대의 콘텐츠를 고민하는 것.
NHK의 이런 시도는 올해 상용화한 일본판 지상파DMB인 ‘원세그’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 지상파들은 디지털방송규격으로 독자표준인 ISDB-T를 채택했다. ISDB-T는 채널당 13개 부분(세그먼트)로 나뉘며, 이중 1개 세그에서 휴대이동방송(이른바 모바일TV)용 전파를 내보내는 구조다. 자연스럽게 기존 지상파의 디지털방송을 100% 재송신하는 셈이다. 기술적으론 디지털지상파와 휴대이동방송을 하나의 채널과 송신소에서 처리하는 최고 효율성을 자랑한다.
원세그는 지난해 12월 시험방송을 시작해 올 4월 상용화를 시작했다. 와다 국장은 “벌써 원세그 수신 겸용 휴대폰이 60만대 이상 팔렸다”고 말했다. 또 원세그의 세대 기준 커버리지도 기술적으로 지상파 디지털방송 영역과 같아 올 12월 기준 85% 세대를 커버할 전망이다. 그는 “아직 원세그는 데이터방송 제공에 머무르고 있어 이제 VOD, 네트워크 게임 등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NHK를 제외한 다른 지상파방송사들은 원세그를 기반한 전자상거래 준비에 분주한 상황이다. 일본 지상파들은 원세그가 정착하면 인터넷의 부상으로 떨어지는 시청율을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 다른 현안인 IPTV에서의 지상파 재송신에 대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없다. 일본에서도 지역방송사의 권역문제, 동시재송신할때 IPTV에서 생기는 시간 지체, H.264의 안정성 문제 등 우리와 유사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총무성, NTT, NHK 등 주요 당사자들은 모두 ‘서로 협조를 꾸준히 하면 2008년께 재송신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본적인 상호 로드맵 공유의 자세가 갖춰진 셈이다.
◆J콤
일본 최대 케이블TV사업자인 J콤은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초고속인터넷+방송+전화)’에서 거대 통신사업자보다 발빠르게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J콤은 케이블TV 가입자가 190만가구,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00만가구, 전화(교환기방식) 110만가구를 확보한 상태다. 가토 토루 상품전략본부장(이사)은 “45만가구 정도인 22∼23%가 3개를 모두 제공받는 TPS 가입자”라고 설명했다. J콤은 3개 비즈니스 모두가 동시에 증가 추세여서 통신진영을 긴장시킨다.
일본 시장은 그러나 케이블TV사업자가 통신사업자에 비해 약세로 꼽힌다. 일례로 J콤이 사업권을 가진 지역의 가구 중 망이 연결된 홈패스가구는 800만가구다. 결국 J콤은 이중 190만가구만을 자사의 케이블TV가입자로 확보한 셈이다. 가토 이사는 “일본 전체로 보면 3000만가구의 홈패스율중 케이블TV 가입자는 600만가구 정도로 20%선”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케이블TV가 전체 가구의 60∼70%를 가입자와 확보한 대목과 대조된다.
J콤에게 있어 현재 일본의 KDDI, 소프트뱅크 등이 제공중인 IPTV는 큰 위협요인이 아니다. 가토 이사는 “현재의 IPTV는 지상파방송이 재송신이 안 되는데다, 영상 품질이 떨어지고 채널변경시 지체시간도 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진정한 격전은 오는 2008년 NTT가 H.264의 기술적 안정성 확보, 저작권 문제 해결, 재송신 권한 확보 등을 이루고 IPTV에 진입하는 순간 부터란 설명이다.
그는 “NTT는 오는 2010년까지 3000만세대의 FTTH가입 가구 확보 전략을 내세웠지만 대략 1500만∼2000만세대가 가능할 것”이라며 “2008년 IPTV 진입후 채널상품이 좋다면 4∼5년새 FTTH 가입자의 15∼20%를 IPTV 가입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NTT 외엔 전력계 회사과 제휴를 맺은 통신사업자인 KDDI를 경쟁자로 꼽았다. 가토 이사는 “통신사업자의 IPTV 진입이 어떤 측면에서 유료방송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는 ‘득’도 있다”고 덧붙였다.
통신사업자와 일전에 대해 “일본 케이블TV업계 전체 매출을 합쳐도 5000억∼6000억엔 정도인데 NTT그룹은 10조엔, KDDI그룹은 3조엔 규모”라며 “그렇지만 가정까지의 가입자망은 케이블TV업계를 다 합치면 NTT에 이은 2위”라고 설명했다. NTT를 넘어서는 전쟁은 못하지만 ‘작은 강자’로서 해볼만 하다는 설명인 셈. 일본 케이블TV업계내 합종연횡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케이블TV가 가장 두려워하는 NTT의 힘은 바로 마케팅력이다. NTT는 최근 ‘히카리(光)’을 전면에 내세워, ‘히카리=FTTH=나은 기술과 서비스=NTT’ 공식을 소비자에 전파했다. 디지털케이블TV와 IPTV간 경쟁에서 콘텐츠 확보 능력면에선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소비자들이 ‘디지털케이블TV=낮은기술’로 치부할 경우 힘들다는 것.
가토 이사는 “기술면에선 안 밀리지만 브랜드·마케팅에선 힘들 수 있어 대비책을 짜야한다”며 “우리도 히카리케이블나 히카리TV같이 새로운 이미지 전략을 내세우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도쿄(일본)=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