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개별 기업의 플랫폼 기술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술 발전을 보장하고 일정 수준에 올랐을 때 표준 규격을 확대한다면 표준화와 기술 발전 모두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위피’에 대한 정책 당국자의 설명이다. 표준화와 기술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아야 하는 고민이 담긴 표현이다. 일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고 표준화 효과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현실은 다르다. 위피 도입 이후 우리 플랫폼 기술이 과연 발전했을까. 표준화 이후 퀄컴의 ‘브루’ 플랫폼에서 위피로 변경했던 KTF는 큰 혼란을 겪었다. LG텔레콤도 사실상 플랫폼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후발 사업자들은 위피 버전을 변경하려 해도 제조사의 협조를 받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선후발 사업자 간의 플랫폼 기술 격차는 더 심화되는 추세다. 브루 응용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국내 콘텐츠 개발사들의 명맥도 사실상 끊긴 상태다.
위피가 우리나라 고유의 플랫폼 기술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시장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기술은 미국의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 로열티를 제공해야 하는 자바 일색이다. 그것도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자바를 선택, 로열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상실했다. 토종 고유 플랫폼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그렇다면 표준화 측면에서는 큰 진전을 이뤘는가. 세계 어떤 국가보다 가장 강한 표준 정책을 법으로 명문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민망한 수준이다. 표준 규격보다 이통사 자체 규격이 많아졌고 이통사 간 위피 버전 격차도 2년 이상 벌어지면서 표준의 최대 장점인 호환성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질 지경이다.
이런 문제에 대비해 전기통신설비에 대한 상호접속기준 고시 제54조 3항에는 “추가·갱신되는 기능을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개시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모든 플랫폼이 같은 기능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사문 규정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정말 표준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까지 제기한다.
세계 무선 플랫폼 시장은 향후 2∼3년 내 경쟁구도가 모두 확정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 사업자나 제조사들도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PC 시장처럼 특정 기업의 기술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한이 촉박하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통화방식(GSM) 서비스 사업자들의 표준화 기구인 OMTP는 최근 SK텔레콤의 플랫폼인 ‘티팩(T-PAK)’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이 기술을 표준에 반영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표준화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기술력이 뒤처지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표준화와 기술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한 번에 잡기 어렵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우리는 5년 전 표준을 선택했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 시장의 자율 통제 기능을 살리지 못했고, 정부의 일관된 정책도 부재했다.
그간 시장은 급변했다. 무선 소프트웨어 시장의 주도권을 노리는 거대 선진 기업은 우리에게 경쟁을 강요한다. 우리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도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또 한번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목표가 표준이라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표준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기술 발전이 우선 목표라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생존의 기로에 선 위피에 주어진 시간은 2∼3년에 불과하다.
김태훈기자@전자신문, taeh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