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황당 임무’가 주어졌다. 2주에 걸친 황당미션을 보며 마냥 재미를 즐기던 기자에게도 드디어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미션을 수행할 작품은 ‘에픽크로니클 2’. 이미 여러번 체험한 바 있으며 엔딩까지 경험해 본 작품이기에 부담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미션의 주제를 받자 ‘왜? 어째서?’란 단어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RPG류의 게임에서 각종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엔딩을 보라니…, 병사에게 전쟁터에 총을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황당함에 한 동안 멍해 있었다. 그러나 미션은 미션! 반드시 공주의 저주를 풀고 주인공의 정체성을 찾아주리라 굳게 마음먹고 미션 수행모드로 돌입했다.
우선 지난 번 체험을 바탕으로 철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맵을 점검하고 각 보스몹들의 특징을 조사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계획을 세우자 어느새 다시 자신감으로 충만함을 느낄수 있었다.눈치가 빠른 유저들이라면 이미 짐작 했겠지만 이번 미션의 성공 여부는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통한 무한 레벨업에 달려있다. 궁극의 무기인 ‘엑스칼리버’나 마법봉 ‘오닉스’만 있다면 낮은 레벨에서도 무서운 보스몹들을 식은 죽 먹듯 요리할 수 있지만 기본 무기만으로 보스몹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여간 까다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상대 보다 훨씬 더 높은 레벨에 있어야 한다는 궁극의 명제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또 플레이 타임(지난 체험에도 10시간 이상을 투자하고 나서야 엔딩을 볼 수 있었다.)을 고려해 조금만 틈이 나면 미션 수행을 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레벨업은 시간과의 승부.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미션에 돌입했다. 게임이 시작되고 에넘 마을 북쪽 숲에서 몹들을 사냥하며 레벨업에 열을 올렸다. 처음 상대하게 될 보스몹인 산적 두목의 레벨을 고려해 일단 레벨을 4단계 올리려 마음먹고 정신없이 몹들을 찾아 숲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또 골드를 아껴 많은 약물을 구입하기 위해 산 중턱에 있는 회복의 석상을 적절히 이용했다. 석상의 전 후로 이동하며 상대몹을 상대하다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면 석상을 통해 체력과 마나를 회복했다. 시작은 산뜻했다. 지난번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벨 4를 완성했다.
“흐흐흐 드디어 첫 번째 사냥이군.” 의기양양, 무작정 공주를 납치한 산적들에게 달려가 결투를 신청했다. 교전 중에도 이미 계획한 대로 약한 상대를 골라 먼저 공략했다. 산적의 수는 3명. 기자의 공격에 똘마니 산적 두명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드디어 첫승이다!’ 라는 생각에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보스몹과의 결투를 서두른 것이 화를 불렀다. 깜박하고 약물을 구입하는 것을 잊은 것이다. 맵을 돌아다니며 얻은 약간의 회복계열 약물이 있었으나 산적두목을 쓰러뜨리기엔 너무 부족한 양이었다. 또 보스몹을 상대하기 전 게임을 저장하지 않는 큰 실수도 범했다. 후회로 가득찬 순간 티그와 보는 쓰러져 갔고 미션완수도 실패로 돌아갔다.온몸에 힘이 빠졌다. 어쩌자고 이런 실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철두철미한 계획이 한 순간의 실수로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 동안 ‘게임오버’라는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호흡과 함께 심기일전하고 ‘새로하기’ 버튼을 눌렀다.
지난 번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더욱 많은 몹을 사냥했다. 정신 없는 사냥끝에 얻은 레벨은 7. 또한 마을로 돌아가 회복계 물약을 다량 구입하고 게임을 저장하고 난 후 산적두목이 기다리고 있는 숲 정상으로 향했다. 납치한 공주를 내놓으라는 티그를 보며 산적두목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야비하게 웃어 보였다.
‘곧 쓴웃음을 짓게 만들어 주마’ 레벨업으로 인한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회복계 물약을 쓸 틈도 없이 산적일당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음하하하, 바로 이맛이야’ 산적두목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 오히려 약이 된 것이다. 이제야 미션을 컴플리트할 계획이 더욱 뚜렷해 졌다.
그 요지를 살펴보면 첫째, 보스를 만나기 전엔 반드시 약물을 대량으로 구입할 것, 두 번째, 수시로 게임을 저장할 것, 마지막으로는 ‘이정도 레벨이면 됐어’라고 생각될 때부터 레벨을 몇 단계정도 더 업 시킬 것 등이었다.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게임을 계속 진행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수월하게 풀려나갔다. 계획했던 모든 것이 착착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계획된대로 미션을 수행하던 중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한 것은 ‘드래곤’의 등장부터였다.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블러드 갱도로 내려갔으나 전설 속의 드래곤은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전에 체험했을 때보다 5단계나 높은 35렙에서도 도무지 잡혀주질 않았다.
‘레벨을 더 올려야 하나’라는 생각에 37렙까지 올리고 나서 다시 도전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레벨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구나’ 무엇이 문제인가 고민에 빠졌다. ‘어디부터 잘못 됐을까?’ 머릿속에는 드래곤과의 사투가 영상처럼 스쳐갔다. 그 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차’하는 마음에 개인상태창으로 들어가 체력과 마나게이지를 살폈다. ‘역시나 이것이 문제였구나’ 마나보다는 체력업그레이드에 더욱 치중하자는 애초의 계획이 잘못됐음을 안 것이다.
전설의 무기가 있으면 여러가지 스킬과 콤보를 사용해 더욱 강력한 공격이 가능하지만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의 공격은 그만큼 상대에게 큰 데미지를 입히기 힘들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때문에 마나가 다 떨어지면 기본공격으로만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왔다. 일반 몹이라면 기본공격만으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지만 보스몹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애초의 계획이 잘못됐음을 알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계속 계획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 레벨업에 더욱 신경을 썼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초조함이 자리잡았다. 레벨이 올라갈 수록 한 단계의 레벨업도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드래곤을 제압하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남은 여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힘든 사투는 드래곤 후에도 계속 됐다. 그렐, 바쿠타, 사라만다 등 드래곤보다 더 강력한 보스몹의 출현이 티그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드디어 미션완수의 결정적인 장애물이 나타났다. 바로 악의 마법사 자탄의 등장이었다. 레벨 50를 가지고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 후 레벨을 55 가까이 올렸으나 또 다시 실패했다. 티그일행의 공격력에 비해 자탄의 회복 속도는 얄미울 정도로 너무 빨랐다.
몇번의 시도를 더 해 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적 여유도 더이상은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시도했다. 이 전투를 통해 결정적인 패인과 함께 불가능함을 알았다. 최대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콤비 공격의 데미지가 400∼500정도에 그쳤지만 자탄의 회복마법은 한 번 사용에 1400이 넘는 수치를 보인 것이다. 아무리 공격해도 상대에게 결정적인 데미지를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레벨에서는 무리임을 시인하는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컸다. 처음부터 쉽게 달성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자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불가능한 미션이 아니었다. 최고렙인 99라면 자탄이 아니라 마지막 보스인 아퀴쥴라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미션수행은 종료했지만 기자의 미션수행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쭈∼욱.
<김명근기자 diony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