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로봇업계 간담회. 류필계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본부장과 로봇업계 CEO가 마주 앉았다. 9월에 시작될 URC로봇(국민로봇) 시범사업에 대한 우려가 터져나왔다.
참여 기업들은 단계별 접근을 제안했다. “시장의 반응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잠재 고객을 확보한 뒤 수백대 규모의 생산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A사 대표).” “단계별로 나눠 접근해야 합니다.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B사 임원).” 성공 가능성에 대한 솔직한 평가도 나왔다. “팔 수 있는 물건인지는 만드는 회사가 가장 잘 압니다. 현재로선 (팔릴) 가능성이 적습니다(C사 대표).”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단호했다. “시장 반응을 예단할 수 없지만 시범사업의 규모를 줄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당초 600여대였던 시범사업 대수는 오히려 1000여대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지난해 말 6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BcN로봇 시범사업의 결과물을 제대로 정리해 공개한 것도 아니었다. 국가 예산을 들여 시행한 시범사업의 결과물을 쉬쉬하고 넘어갔다. 시장을 열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배울거리를 남기지 못한 시범사업은 예산 낭비일 뿐이다.
한 참여자는 “지난해 BcN로봇 시범사업 결과를 보니 태반이 로봇을 창고에 넣어놓고 사용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나와 당황스러웠다”며 “사용자 선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로봇사업에서 정부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는 이유는 정책의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로봇 사업이 정권 차원의 관심을 담은 주요 사업(성장동력사업)인데다 부처 간에 경쟁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망설임이나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동시에 이면에선 정책 성과에 대한 부담과 위험 부담만 서서히 커지는 것이다.
아예 사업 자체를 덮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정통부는 지능로봇산업협회와 함께 지난해 말부터 리서치 회사인 R사에 용역을 줘 시장 실태 조사와 전망치 조사를 벌였다. 업계의 기대와 관심을 끌었지만 결과물은 아직까지도 드러나지 않았다. 고스란히 묻혔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 예측이 2010년 10조원이라는 정부의 시장 목표보다 터무니 없이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몇 가지 수치를 조정하며 R사에 재조사를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결국 조정에 실패하고 이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정부가 2010년 10조원에 목을 매는 것은 이 수치가 지난해 말 지능형 로봇산업 비전과 발전 전략 회의에서 대통령에 보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도권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장밋빛 전망’을 스스로 어둡게 할 수는 차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통부 관계자는 “시장 전망의 기준에 대한 이견을 실무진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조사를 매듭짓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무리수도 유발됐다. 산업자원부는 정통부와의 경쟁 때문에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개발한 방재로봇, 소방로봇 등을 현장에 투입하는 시범사업을 무리하게 앞당기려다 무산되는 경험을 했다. 당초 8∼9월께 소방서 등 현장에 투입하려고 했으나 내년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을 뒤로 미룬 것이다.
로봇 개발 일정도 이 시기에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국민로봇 사업으로 헤게모니를 쥐려 한 정통부와의 정책 경쟁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무리수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게 산업계가 바라보는 시각이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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