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융합가전
가전제품이 처음 등장한 이후 최근까지 일어난 변화의 핵심은 대형화와 고급화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14인치 흑백 TV가 부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신혼부부 중 열에 다섯 쌍 이상이 30인치가 넘는 디지털 TV를 산다. 양문형 냉장고는 기본이고 드럼 세탁기 역시 대중화를 이뤄냈다. 이제 다가올 가전제품의 변화는 네트워크와 센서가 견인차다. 사람의 오감과 같은 각종 센서가 가정환경과 구성원의 상태를 파악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이 정보를 공유, 최적의 능동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것이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이다.
◇미래 가정 변화의 시작,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은 한 마디로 전통적인 디지털가전에 이종 신기술인 NT나 BT가 융합된 가전제품을 말한다. 지능형, 환경형, 감성형 및 웰빙형 등의 성격이 골고루 나타난다.
최근 가격 경쟁력에 기술까지 더해진 중국의 급부상으로 세계 디지털가전 시장이 급속도로 레드오션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블루오션 가전 시장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국에서 진행 중이다. 그 해답을 대개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에서 찾고 있다.
미래의 가정은 편안함, 감성 맞춤, 지능형을 키워드로 한다. 거주자에게 최고의 안락함을 제공해 주는 공간으로 변모할 것으로 전망이다. 이를 위한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의 핵심 부품은 생활환경 센싱 모듈, 감성정보 인식 모듈, 개인 맞춤형 제어 모듈, 플렉시블 회로기판 기술 등을 꼽을 수 있다.
생활환경 센싱 모듈은 온도, 습도, 소음 등 가정 내의 환경정보와 혈압이나 맥박 등 인체 대사 정보, 거주자의 주요 움직임에 따른 생활습관 등을 복합적으로 인지하는 역할을 한다. 비슷한 기술이지만 감성정보 인식 모듈은 주로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람의 얼굴 표정, 목소리, 감정상태, 동작, 움직임 등을 감지하는 부품이다.
개인 맞춤형 제어 모듈은 가정의 거주자가 가장 쾌적하고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인공지능적으로 판단해 가전제품을 그에 맞게 조절해 준다. 플렉시블 회로기판 기술은 자유롭게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가전기기 제작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 시장은 기존 가전제품 시장을 급속도로 대체해 나갈 수밖에 없다. 세계 가전 시장은 연평균 4.7% 성장, 2010년에는 3497억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디지털 TV나 디지털카메라 등 영상기기가 성장을 주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방송 및 통신 융합 기기처럼 신규 제품이 성장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노년층의 증가와 친환경 웰빙에 대한 수요 증가로 2010년 이후에는 편안함, 감성맞춤, 지능화를 키워드로 한 융합기기가 가전시장 성장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기초는 약하지만 가능성은 충분=우리나라는 지난 95년부터 과기부에서 감성공학기반 기술개발사업을 통해 감성 데이터베이스 등 제품개발에 필요한 기반을 확보했지만 기초연구 차원의 사업추진과 관련기술의 미비로 상용화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물론 선진국에서도 아직 IT와 BT, NT가 제대로 융합된 복합형 융합 가전기기의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늦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쌓은 디지털 가전 분야의 노하우에 세계 최고 수준인 네트워크 환경을 더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
다만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의 핵심 기술인 센서 분야가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현재 상태라면 해외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먼저 생활환경 센싱 모듈 분야는 위치인식 기반의 기술개발이 광주과기원과 삼성SDS를 중심으로 주로 이뤄지고 있지만 실내 공기, 온도, 습도 등 생활환경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 활용하는 연구개발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감성정보 인식 모듈은 다중 생체정보 간의 융합 기술이 중추인데 이는 제어분야에 국한돼 있는 실정이다. 인간 생체정보 센서등을 이용, 인간의 오감에 의한 활동을 모델링해야 하지만 아직 이를 활용한 상용화 모델은 나와 있지 않다.
개인 맞춤형 제어 모듈은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연구와 인간 친화형 오감정보처리 기술에 대한 연구가 학계 차원에서 진행되는 수준이다. 플렉시블 회로기판 기술은 연구소와 대학 등에서 기초 연구가 진행 중에 있으나 부품에 적용하기 위한 원천 기술 및 응용을 위한 연구 개발이 미진한 상황이다. 다만 소프트픽셀이라는 국내 벤처 기업이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최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디지털코리아를 견제하는 일본과 미국=가전 시장의 맹주에서 디지털 가정으로 넘어오면서 주춤했던 일본은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 시장에서 와신상담을 노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7대 전략 산업 중 정보가전과 건강복지기기를 선정,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역시 IT를 사물 및 환경과 통합해 인간의 실생활을 지원하고 개선하고자 한다. 유럽연합은 지난 2002년부터 작년까지 유럽미래기술계획을 통해 사물지능화와 착용형 컴퓨터 환경 등 16개 사업을 추진,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의 기초를 다져왔다.
생활환경 센싱 모듈 분야에서는 일본의 도시바가 발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회사는 손목 착용형 의료 감시 및 경보 장치를 이미 개발했으며 박동, 산소포화도, ECG, 체온등을 수집해서 전송하는 생체 환경 센싱 모듈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나사(NASA)에서는 우주인을 위하여 개발된 생체신호 모니터링 시스템을 변형해 병원이나,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감성정보 인식 모듈은 미국이 앞서 나가는데 MIT에서는 실시간 표정 인식, 잡음에 강한 얼굴 인식, 동작 분석 기반 애니메이션 합성 등의 기반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제어 모듈 역시 미국 MIT가 앞서 나간다. MIT는 ‘things that think’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기계가 사람의 언어와 행동, 생활습관 등을 스스로 이해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관련 기술을 쌓아가고 있다.
플렉시블 회로기판 기술은 일본이 선두주자다. 일본의 신에너지산업총합개발기구(NEDO)는 세라믹을 기판으로 압전 소재, 유전체 소재 등을 형성시키는 저온 후막 형성기술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을 개발했다.
◆업체 소개-삼성전자
삼성전자(대표 윤종용)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가전 시장의 선두주자다. 이미 디지털 TV를 비롯한 많은 디지털 가전 분야에서 일본을 제쳤다. 디지털 신기술융합 가전에서도 삼성전자는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을 발빠르게 놓고 있다.
그 전진기지는 작년 9월 완공한 수원 사업장 내의 디지털연구소다. 연면적은 6만5000평으로 축구장 30배 크기에 총 공사비는 4400억원이 들었다.
디스플레이, 오디오, 모바일 컨버전스 단말 부문에서 세계 시장을 이끌어가려는 삼성전자의 야심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연구개발(R&D) 인력 4200여명 등을 포함해 5200여명이 입주해 있다. 전체 인력 중 1500여명 정도가 석사 이상이며 약 150명의 외국인도 포함돼 있다.
디지털연구소는 사무와 연구, 각종 실험과 안전규격 시험까지 한 건물 안에서 모두 이뤄진다. 완전무향실과 청취실, 방음실, 화질 및 음질평가실 등 특수 실험실은 7000여평의 규모뿐 아니라 인력과 장비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TV 개발팀은 새로운 초대형 LCD와 PDP, 프로젝션TV 등을 연구 중이다. 종전에 브라운관과 모니터 개발팀으로 분리돼 있었으나 건물 완공 이후 함께 입주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매월 경쟁 업체의 신제품을 20여대씩 사서 비교 평가하는 일도 이곳에서 한다.
150여평의 신호처리실은 미니 방송국 수준이다. 우리나라 방송 프로그램부터 해외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내용을 각 사업장과 연구소에 보내 TV 개발에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DM총괄의 최지성 사장은 “이곳은 LCD와 PDP TV 등 디지털 TV 전 부문 1위 등극을 위한 핵심 전초기지”라며 “디지털 르네상스 선봉이 될 프린터, 캠코더, 모니터, 노트북PC 등 창조적 혁신 제품이 연이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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