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가 채 피기도 전에 시들어가고 있다는 우울한 전망과 찌는 듯한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에게 한 줄기 단비 같은 소식이다. 올해 상반기 부품소재 수출이 반기 최고치를 연속으로 경신했다고 한다. 산업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부품소재 수출액은 694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7% 늘어났으며 작년 하반기 최고치 기록까지 돌파했다. 부품소재 산업은 수출액에서뿐 아니라 무역수지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부품소재 무역흑자는 작년 동기보다 53억4000만달러 증가한 148억5000만달러에 이르렀다. 전 산업 무역흑자 70억4000만달러의 두 배다.
부품소재의 수출 호조와 무역수지 확대는 산업 구조조정과 고도화가 시급한 우리 경제에도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조립 완성품 위주로 성장해온 산업이 부품소재의 자급과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위주로 성숙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0년을 전후로 세계의 제조창으로 부상한 중국의 위협을 받아온 우리 산업이 자생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부품소재 산업의 경이적인 성과는 특히 국내 투자 기피와 공장의 해외 이전이라는 산업 공동화 추세 속에서 거뒀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부품·소재만이 살길이라며 육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정부의 노력과 기업들의 피땀나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 덕분이다. 부품소재 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온 산자부가 “부품소재 무역수지 호조세는 매우 고무적”이라며 반색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성과에 만족하고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부품소재 산업은 국내 제조업 전체 생산과 수출, 고용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비중이 늘고 있다. 전체 산업에서, 수출에서, 무역수지에서 부품소재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취약한 우리 경제의 위험도 그만큼 높아진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부품소재 수출과 무역수지가 악화될 경우 우리 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이제는 양적인 성과보다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부품소재 산업의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짜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부품소재 산업은 고질적인 대일 무역적자도 문제지만 전자부품이 전체 수출액의 40%에 이를 정도로 수출과 무역수지면에서 특정 품목과 기업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전자부품 중에서도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중소·중견기업의 품목들은 아직 비중이 미미하고 그나마 수출 거래처도 다변화돼 있지 못하다. 정확한 통계나 집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중소·중견기업들은 거래처가 상당 부분 국내 업체들의 해외공장 등으로 국한돼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부품소재의 호조세는 특정 품목의 경기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과실 또한 소수의 대기업에 국한되고 있다.
부품소재의 수출과 무역흑자 확대가 일정 부분 산업 공동화와 연계돼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수출의 상당 부분이 국내 업체들이 해외로 이전한 공장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자동차용 부품의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해외공장 건설에 너도 나도 뛰어들기 시작한 1997년 이후 부품소재 수출과 무역흑자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부 대기업이 주도하고 한정된 품목과 거래처에 의존한 채 누리는 부품소재의 호조세만으로는 결코 질적인 도약을 이룰 수 없다. ‘다수의 중핵기업이’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에’ ‘경쟁력 있는 다양한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온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