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더위와 싸우느라 체력이 떨어진 어느날 특명이 떨어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온라인 야구 게임 ‘신야구’에서 직구만으로 무실점 승리를 쟁취하라는 것. 더위에 이미 녹초가 돼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업친데 덥친 격이요, 한 낮에 해변에서 식용유 바르고 선텐하라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맡은바 임무를 철저히 해 내기로 유명한(?) 기자가 아닌가. 허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주어진 미션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고 일단 한판 도전해 보기로 했다.사실 ‘신야구’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15전 5승 10패), 도전 성공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 만약 도전에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인간승리요, 불멸의 도전정신의 표상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게임에 접속하고 처음 맞닥뜨린 상대에게 4대0 콜드게임을 당하고 만것이다.
‘하하. 머 오랜만에 하니 조작이 서툴러서 그렇겠지. 그럼 먼저 연습모드를 통해 타격 타이밍과 조작을 익혀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무실점으로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수를 내지 못하면 승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연습모드 조차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EASY, NORMAL, HARD의 세가지 난이도 중 EASY를 선택했음에도 안타는 커녕 공에 배트를 맞히지도 못한 것이다(물론 처음 몇판만 그랬다). 조금씩 조금씩 감을 익혀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그렇게 연습모드를 통해 천천히 내공을 쌓은 후 본격적인 도전에 임하기로 했다.
타격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작전의 필요성을 느꼈다. 직구만으로 무실점 수비를 펼친다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야구경기에서도 박찬호같은 강속도 투수 조차도, 변화구의 뒷받침이 없다면 그저 빠른 공일 뿐 치기 힘든 공은 아니기에 직구를 던지면서 실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만 했다.한참을 작전 구상에 몰두했다(지장으로 소문난 김응룡감독 못지않은 집중력에 본인도 놀랐다). 하지만 오랜 고민끝에 내놓은 결론은 너무도 단순했다. 그것은 바로 먼저 공격하는 것. 즉 원정팀을 선택 1회초 공격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홈팀으로 1회말 공격을 시작한다면 자칫 1회초 실점을 허용해 시작조차 하지 못한채 도전실패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야와 내야 수비의 후진배치. 이것은 모든 공을 직구로만 던져야하는 불리한 상황에서 장타로 인한 실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만약 아이템을 사용해 수비수의 발을 빠르게 할 수 있었다면 더없이 좋은 금상첨화이겠지만, 아이템을 전혀 사용치 못한다는 도전과제 때문에 이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내·외야수의 후진배치와 함께 철저하게 몸쪽 낮은 공으로 승부한다는 작전도 세웠다. 이유는 실제 야구 경기와 다르지만 아무래도 몸쪽 낮은공이라면 장타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투수. 현재 기자가 보유하고 있는 팀은 한화 이글스로 팀 내에서 특급투수로 손색없는 정민철과 송진우를 마운드에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하늘에 운을 맡기기로 하고 도전에 임했다.
맨처음 도전을 실시한 곳은 루키리그. 이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자유리그에서 프로선수들과 대결은 한살배기 어린아이가 두발로 백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준비한 덕 분일까? 도전에 임하는 기자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의 물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드디어 시작된 1회초 공격. 반드시 득점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자꾸 타이밍을 놓치면서 아웃카운트를 늘려만 갔다.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커브와 슬라이더 그리고 포크볼을 적절히 섞어가며 던지는 상대방의 투구 패턴에 말려 허무하게 1회초 공격을 마무리했다.이 후 시작된 1회말 수비.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마운드에는 정민철이 올랐고 힘있게 뿌린 초구 몸쪽 낮은 직구는 150KM를 찍으며 멋지게 스트라이크! 다시 던진 몸쪽 낮은 직구 역시 헛스윙을 유도하며 스트라이크!
‘오∼ 이대로만 진행되면 무실점 승리도 문제없겠군’ 공격에서의 허술함을 잊은 듯 거만해진 기자. 또 다시 몸쪽 낮은 직구를 던지다 그만 상대방에서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아뿔싸! 너무 방심했다. 같은 코스로 공을 3개나 연속으로 던지다니, 다음엔 코스를 바꿔가며 던져야 겠다.’
무사 주자 1루인 상황에서 던진 바깥쪽 낮은 공. 게이지 바에 정확히 맞히면서 공은 힘있게 나아갔다. 그리고 들리는 경쾌한 소리 ‘딱!’ ‘홈∼런!’ 그렇다. 상대방은 이미 내가 직구만 던진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코어는 2-0. 하지만 직구만으로 승부한다는 것을 간파당한 이상. 더이상 승부는 무의미했다. 계속해서 연타를 허용한 끝에 4-0까지 점수는 벌어졌고, 결국 또 다시 콜드게임 패 당하고 말았다.
이후 50번 이상의 도전을 했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직구만으로 승부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제아무리 수비수의 후진배치를 한다한들 홈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1회초 공격에서 많은 점수를 낸다한들 다음회에 점수를 내주기 때문에 무실점으로 승리한다는 도전에 성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얻은 결론은 직구만으론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
즉 1회말 수비는 잘 견디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후에 상대방에게 직구위주의 패턴이 간파당한다면 그 후 여지없이 연타를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직구가 제아무리 빠르다해도 변화구와 함께 던지지 않는다면 타자를 속이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 없이 많은 콜드게임과 패배를 당하면서 한가지 얻은 점은 ‘나는 실패했지만 누군가 성공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 야구는 바로 심리전이다. 누군가 고수가 나서서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심리전을 펼치며 여기 저기로 직구를 찔러 넣었다면 이겼을 지도 모른다. 결과는 부족한 실력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철저한 훈련으로 단련했다면 1승이 꿈만은 아니었으리라.
<모승현기자 mozir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