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업계가 앞다퉈 전자태그(RFID)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세계 시장 선점의 근간이 되는 표준 주도 작업에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IT 서비스 업체를 포함한 RFID 개발 업체들이 국제 표준 민간 단체인 ‘EPC(Electronic Product Code) 글로벌’ 회원 가입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공급망관리(SCM)를 비롯한 차세대 RFID 관련 시장 주도권 다툼에서 뒤질 것으로 우려된다.
EPC는 현재 전 세계에 통용되는 바코드를 RFID 체계로 대체한 것. 따라서 RFID 상용화 시기를 떠나 어차피 바코드처럼 EPC가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라면 IT 서비스·리더·소프트웨어(SW) 등 RFID 개발 업체들이 지금까지의 관망 자세에서 벗어나 EPC 글로벌 가입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조한 EPC 글로벌 가입률=한국유통물류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8월부터 현재까지 3년 동안 EPC 글로벌에 가입한 전 세계 890개 기업 중 국내 기업은 28개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자원부·한국전산원·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공공기관 9곳, 삼성전자·LG전자·레인콤·CJ GLS 등 제조·유통업 4곳, 투비소프트·삼성SDS·현대정보기술 등 IT 서비스 및 SW업체 15곳이 가입해 EPC 기술 표준을 준수하고 있다.
대다수 업체가 성장 아이템으로 RFID를 앞세우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심지어 IT 서비스 산업 선두 그룹인 LG CNS조차 가입하지 않는 등 차기 성장동력으로 일컬어지는 RFID 산업에 대한 국내 기업의 선점 준비가 지나치게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EPC 글로벌이 비회원에게 기술 표준 공개를 금지할 뿐더러 표준 제정 참여도 불허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무관심이 한몫 하고 있다. 올해 공공기관 RFID 확산 사업(u-IT 선도사업) 선정 업체 중 한 곳도 EPC 글로벌에 가입하지 않은 채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전산원 한 관계자는 “해외가 아닌 국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RFID 확산 사업을 전개, 굳이 EPC 표준을 따르지 않아도 시스템 작동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통망 주도권 장악 상실 우려=그러나 RFID 개발 업체들이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일찌감치 EPC 글로벌에 가입, 표준에 맞게 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표준 제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특히 국제표준기구(ISO)가 EPC 글로벌이 제정한 EPC UHF Gen2 규격을 지난 6월 말 표준으로 공식 채택, 사실상 국제 표준의 위상을 갖기 시작했다. 또 EPC 글로벌이 하드웨어에 이어 SW 분야 EPCIS 표준안도 하반기 확정, 내년 말부터 EPC 표준을 지원하는 제품이 잇따라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창열 동의대학교 교수는 “EPC 체계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시점은 2008년께로 예측된다”며 “RFID 개발 업체들이 EPC 표준에 빨리 눈을 뜨지 않으면 SCM상의 큰 시장에서 어떠한 헤게모니도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6만개 납품 업체에 EPC 기반 RFID 부착 의무화 방침을 정했으며 FDA도 의약품에 RFID 부착을 의무사항으로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월마트도 2005년 상위 100대 기업, 2006년 300대 기업이 의무적으로 케이스와 팰릿 단위로 EPC 기반 RFID 부착 납품을 의무화하는 등 EPC 기반 RFID 적용은 우리의 주요 수출 대상국인 선진국을 중심으로 강제 시행되는 추세다.
기술표준원 한 관계자는 “일정 금액을 매년 회비로 EPC 글로벌에 내야 하는 비용 부담과 RFID 시장이 초기 단계인 탓에 국내 기업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조달청이 조달 등록 기업을 대상으로 EPC 글로벌 가입 의무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수민기자@전자신문, smahn@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전 세계 기업 EPC 글로벌 가입 현황(2006년 7월 28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