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사업과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는 어찌보면 상호 배치되는 개념이다.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엄격해지면 질수록 대북 경제협력 사업은 위축되며 반대로 개성공단 사업이 확대될수록 전략물자의 대북 반출은 더욱 늘어 잠재적 위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준수하지 않고서는 개성공단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번거롭지만 개성공단 사업을 벌이려는 기업들이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지켜야만 하는 이유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남북교역 가운데 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1% 증가한 3억5882만달러로 나타났다. 개성공단 운영을 위한 건설기자재 반출 증가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공장 가동을 위해 북한으로 반출해야할 품목은 약 1500여개. 중요한 것은 이 품목들 대부분이 전략물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컴퓨터, 선반, 공작기계, 밀링머신은 물론 심지어 재봉틀, 드릴, 망치 등 개성공단 사업에 꼭 필요한 산업용 물자까지도 이중용도(캐치올) 규정에 의해 전략물자로 둔갑할 수 있다.
특히 지난달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와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등으로 국제적인 대북 수출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기업의 주의가 더욱 요망된다. 산자부는 최근 8만여개 무역업체에게 이중용도 품목에 따른 전략물자 수출주의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 사전 예방에 나섰다.
전략물자의 대북반출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통일부 장관이 반출승인권자로 지정돼 있다. 허가는 통일부가 하지만 전략물자 판정은 산자부에 의뢰해 진행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품의 반출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정부의 승인만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전략물자 대북반출에는 미국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수출관리규정(EAR)에 의하면 다른 나라 제품일지라도 미국산 제품, 기술, SW가 일정 비율 포함돼 있다면 상무부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89년 미국산 전략물자를 한국내 기업이 재수출할 시 미국법상 필요할 경우 반드시 미국 정부의 서면동의를 받도록 한미양해각서에 합의했기 때문에 EAR 조항을 준수해야만 한다. 특히 북한의 경우 미국이 지정한 우려국이기 때문에 대북 반출제품에 미국의 기술 등이 10% 이상만 포함돼도 미 상무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KT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KT는 개성공단 사업관련 지난해 7월 미국 상무부에 EAR 관련 통신장비 반출승인을 신청한지 4개월후에야 비로소 북한에 통신망 설치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승인 프로세스는 사업기간 지연, 준비에 따른 노력 배가라는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대북사업을 하고자한다면 어쩔 수 없이 안고가야하는 부담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국제적인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가동되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사업이 확대되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역시 개성공단 사업의 대북반출 만큼은 EAR을 비교적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남북경협 의지와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 요청, 꼼꼼한 전략물자 대북 반출 관리 등이 개성공단 사업확대를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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