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한글과컴퓨터 백종진사장(1)](https://img.etnews.com/photonews/0608/060821015205b.jpg)
(1)한글과컴퓨터와의 만남
한글과컴퓨터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날의 한컴이 있기까지 국민들의 결단과 응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컴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되어 준 국민들의 응원은 나와 한컴의 인연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 기억이다.
PC가 낯설고 어렵기만 하던 90년대에 문서작성은 물론 표 작성도 쉽게 만들어 ‘아래아한글’은 당시로서는 워드프로세서 환경을 바꾼 대단한 토종 소프트웨어였다. 특히, 한글이란 우수한 언어를 컴퓨터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워드프로세서였다는 점에서 당시 ‘아래아한글’은 외국의 거대 기업이 만든 소프트웨어에 맞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컴은 1998년 IMF를 맞아 심각한 경영난에 부딪쳤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업체였던 마이크로소프트는 한컴에 2000만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아래아한글’ 개발 포기를 요구했고, 한컴은 ‘아래아한글’을 포기한다는 발표를 하게 됐다.
당시 나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아래아한글’ 포기에 대한 아쉬움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충격보다 더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아래아한글’ 포기에 대한 발표 직후, ‘아래아한글’ 살리기 운동본부가 발족되는 등 IT 자존심을 버릴 수 없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한컴 측은 ‘아래아한글’ 포기 발표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적인 아래아한글 살리기가 성공하고, 한컴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몇 년 되지 않아 한컴은 그동안 장밋빛 청사진으로 투자했던 여러 기업들의 악화된 실적 소식이 들려왔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불과 몇 년 만에 누적적자 860억 여원이라는 회생 불능의 시점까지 이르게 됐다.
이러한 경영지표의 위기 속에 경영권 분쟁이라는 악재가 시작됐다. 경영권 분쟁 속에서 방향타를 잃은 한컴은 누적된 적자와 함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 때 나는 당시 한컴의 사장이던 김근 사장을 만나게 됐다. 나와 고교동창인 김 사장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업계에서는 뛰어난 인재로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컴의 사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에는 경영권 분쟁에 휩싸여 특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한컴의 기술과 미래를 눈 여겨 보던 나에게 김근 사장과의 만남은 한컴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컴이라는 회사가 보여준 국민적인 공감, 토종 기술력으로 만들어갈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려보게 됐다. IT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내가 그린 청사진들은 나는 물론 한컴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나의 결단을 내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jjb@haan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