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기자의 고수에게 배운다]엑스틸(상)

요즘 날씨는 한 마디로 살인적이다. 미친듯이 비가 오더니 이젠 해머같은 햇살과 무거운 습기가 전국을 덥치고 있다. 불쾌지수가 너무 높아 민심을 우려해 일부러 공식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루머같은 소문도 나돈다. 그래서 이번 고수는 화끈한 액션에서 초빙하기로 결정했다. 액션 가운데에서도 육중한 로봇들이 거대한 무기로 사투를 벌이는 ‘엑스틸’이라면 열대야를 저 멀리 날려 버리기에 충분할 터.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어느날 한 강남의 PC방에서 만난 고수를 통해 액션의 상쾌함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오픈되고 제가 계속 랭킹 1위였는데 요즘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좀 쉬었어요. 그래서 2위로 내려 앉은 겁니다.”

억울한 표정으로 자존심 상한 ‘엑스틸’ 고수 ‘강도(본명 남준식 24세)’의 불만이었다. 강도를 소개 받으면서 2위라고 설명했던 부분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 한수 지도를 부탁하자 묻지도 않았던 랭킹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고수에게 배움을 사사받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래서 당연히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랭킹 시스템이 뭔가 잘못되지 않았는지, 정부와 야당을 탓하는 식의 두리뭉실한 말로 자존심을 채워줬다. 이런 건 또 기자의 전문 분야다. 순식간에 입가로 번지는 미소를 보며 미션 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70명이 소속된 카오스 길드를 이끄는 강도(아이디가 불편하지만 참아 주시길) 사부는 일단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다며 ‘엑스틸’ 서버에 접속했다. 접속하자마자 화면에 시각화되진 않았지만 그를 피하는 유저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인터넷망을 통해 느껴졌다.

“ ‘엑스틸’에서 강도하면 유저들이 많이 아나 보죠?”

“네, 대부분 절 알고 있죠. 그리고 계급이 구세주잖아요. 이건 한 서버에 한 명만 받을 수 있어요.”

자랑스러운 눈빛이었다. 확실히 실력은 대단한 모양이었다. 사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방을 만들고 아는 길드원을 메세지로 호출했다. 순식간에 달려온 3명의 전사들이 방을 채웠다. 최대 16명까지 멀티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이 정도면 실력만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린 사부는 곧바로 게임을 실행시켰다.

나름대로 FPS에 자신있다고 자부했지만 ‘엑스틸’은 부스터를 적극 이용해야하는 것이 크게 달랐다. 고수의 실력은 그야말로 고수다웠다. 정신없는 공방과 어지러운 화면에서도 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타격을 날리는 솜씨가 매끄러웠다. 부스터로 순간적인 속도를 올리며 돌아 다니는 폼이 눈부셨다. 부스터를 사용하는 것도 게이지가 있기 때문에 무한정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금새 다시 채워지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마치 인간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격렬한 행동을 보였던 고수는 마침내 모니터 화면에 ‘빅토리’를 받아 냈다. 이 작품은 일정한 시간동안 플레이가 진행되고 포인트를 기준으로 승부를 결정한다. 한두 번 당해도 끊임없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와중에 기체를 변경할 수 있어 흥미가 더욱 발동된다.가볍게 준비 운동을 끝낸 사부는 씩 웃으며 잘 봤냐고 물어봤다. 물론 잘 봤지요∼. 그리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줬다. 일반적인 FPS와 플레이 방식이 유사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부스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움직이는데 그냥 행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타이밍을 잘 맞춰 물 흐르듯 날아 다녀야 하죠.”

‘엑스틸’의 부스터는 시프트 키를 사용한다. 새끼 손가락으로 이를 컨트롤해야 하는데 어려운 건 없었지만 끊임없이 사용하는 게 힘들었다. 게이지를 눈으로 보지 않고 감으로 느끼고 적절히 조절하면서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고수가 옆에서 거들었다. ‘엑스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맵의 공간감이다. 일반 FPS처럼 땅바닥에 굴러 다니지 않는다. 매우 높은 곳까지 올라 갈 수 있기에 상하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스터 사용은 더욱 중요하다.

어느 정도 부스터에 익숙해지자 사부는 게임에 등장하는 무기의 가장 큰 특징을 설명했다. 그것은 바로 거리에 제약이 있다는 것. “ ‘엑스틸’의 모든 무기들은 타깃의 거리가 각각 달라요. 예를 들어 너무 가까워도 맞지 않고 너무 멀어도 맞지 않는 거리가 존재하는데 그 간격이 다른 것이죠. 정확히 조준을 해도 간격을 벗어나면 총알이 그냥 지나집니다.” 그래서 원거리 무기라도 너무 먼 곳에서의 조준 사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사정거리로 들어가야만 타깃 표시가 들어오고 대미지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잘 모르면 화면으로 대충 조준해도 맞는다고 생각해요. 흔한 실수와 오해입니다. 일반 FPS와 전혀 달라요. 대신 록인이 되면 거의 100%입니다. 원거리만 확률적으로 빗나가고요.”사부의 자세한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식별하기가 조금 힘들어서 아군에게 총질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요즘은 조금 줄어 들었는데 초보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죠.”

실제로 ‘엑스틸’은 유저 아이디의 색깔만으로 파란팀과 붉은 팀을 구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유난히 어지럽고 화려한 전투가 벌어지는 ‘엑스틸’에서 이 정도로는 아군을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아군을 공격해도 대미지를 주진 않지만 정신적 타격이 크고 팀워크가 와해되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말했다. 또 근접 공격은 상대 유니트를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도록 만들기 때문에 의외로 쓸모가 많다고 했다.

그 외에 스킬을 사용하는 공격과 각종 팁을 알려줬으나 자세한 것은 다음에 하자며 간략하게만 알려줬다. 첫술부터 배가 부르진 않는 법이다.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으나 굴뚝같은 마음을 닫고 마지막 핵심 포인트를 부탁했다.

“항상 적이 어디에 있는지 예측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원거리 공격은 주로 높은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찾기가 어려워요.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패턴을 동물적으로 아는 것이 고수의 지름길입니다.”

<김성진기자 har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