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은 지난 96년, 당시 고성능컴퓨터 16대를 러시아에 판매해 혼쭐이 난적있다. IBM 러시아 자회사인 ‘IBM 이스트유럽/아시아’가 최종사용자가 러시아 핵무기 연구소이고, 최종 사용용도가 핵무기 개발 및 연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미 상무부 허가없이 제품을 판매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IBM은 850만달러 벌금형과 17만달러의 과태료 및 수출금지 처분을 받았다. 집행유예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범용 전기·전자제품의 위험용도 수출이 기업에 얼마나 아찔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IBM의 사례처럼 전기·전자 분야의 전략물자 수출관리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첨단화 및 신속한 응용이 가능한 전기·전자 분야의 특성상 사이버전·정보전의 첨병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IT품목이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소홀한 전략물자 관리로 자칫 국제 수출무대에서 타격을 입게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역협회 산하 전략물자무역정보센터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업들이 의뢰한 전략물자 사전판정 신청건수 410건 가운데 전기·전자 분야가 183건으로 45% 가량을 차지, 기계(150건)나 생화학·소재(77건) 분야를 크게 넘어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개성공단내 통신망 설치 등의 이슈에 따라 최근 1년 6개월동안 전기·전자 분야의 전략물자 판정건수는 무려 500건에 달하고 있다.
전기·전자분야의 물자는 4개 수출통제체제 가운데 재래식무기 관련 바세나르 체제와 연관이 있다. 또 대부분 일반 산업용 물자이면서 전략물자로 활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이라는 점에서 캐치올 규정을 적용받는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 전기·전자분야에서 전략물자로 전용될 수 있는 품목은 2000여종에 이르며 이 가운데 800여종이 관련성이 비교적 높다고 보고 있다.
한양여대 김승종 교수가 발표한 ‘수출통제품목의 판정기준’ 자료에 따르면 전기·전자 분야의 경우 △소재가공 △집적회로 등 전자제품 △컴퓨터 △정보통신 및 정보보안 △센서 및 레이저 등의 세부분야에서 전략물자 전용 가능한 품목의 기능과 성능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가령 시스템이나 장비·부품의 경우 45℃ 미만, +85℃ 이상의 온도에서 사용할 수 있거나 복합이론성능이 19만Mtops를 초과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특히 최근 품목 가운데 반도체 장비의 전략물자 판정 사례들이 늘고 있으며 보안제품은 일부 개인용이나 민간용도 품목을 제외하면 방화벽, 침입탐지시스템(IPS 등) 등 상당수가 전략물자로 전용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엄격하다고 해서 일상적인 전기·전자 제품의 수출에 위축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판정자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정교일 박사는 “전기·전자분야에서 많은 판정의뢰가 들어오지만 전략물자에 해당되지 않는 PC나 허브, UPS 및 PC모니터 등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승종교수도 “판정경험에 비춰볼때 수출이 많은 CDMA 등 통신장비나 일반 소비자용 전기·전자제품은 전략물자로 전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안심하고 수출해도 된다”고 말했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산업별 전략물자 사전판정 실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