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율의 함정

 23일 상공회의소 지하 2층 중회의실. 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인터넷상의 주민번호 대체수단 가이드라인’ 공청회는 시작부터 열기로 가득찼다. 개인정보 도용과 사용자 편의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온 탓인지 분위기는 긴장감마저 돌았다.

 이날 정통부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의 내용과 추진일정을 밝혔다. 새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공개한 1차 안의 명칭을 ‘인터넷상의 본인확인 가이드라인’으로 변경하고, 이를 인터넷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준수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였다. 또 14세 미만 아동이나 신원을 확인할 수단이 없는 미성년자가 주민번호 대체수단을 발급받고자 할 때는 본인확인기관이 법정대리인을 통해 발급할 수 있도록 하고, 아울러 대체수단 이용자의 불만을 접수·처리하는 창구를 마련한다는것이다.

 이번 새 가이드라인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바로 ‘자율’이다. 정통부는 ‘주민번호 대체수단 도입이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인터넷 사업자의 의견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 이를 당장 법제화하지 않고 업체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게임업체·포털 등 관련 업체가 이 가이드라인을 자율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자율 방침에 공청회에 참석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가이드라인 도입을 시장에 맡기는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라며 반대했다. 주민번호 대체수단을 사업자에게 단순히 ‘권고’했을 때 그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던 개인정보 도용 피해사례에서 업체의 책임보다 사용자의 부주의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는 서비스 그동안 사업자들이 의무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수단을 갖추도록 하는 강제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나 ‘자율’은 먹기는 쉽지만 소화하기는 어려운 음식과 같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주민번호 대체문제에서 중심은 국민 개개인이다. 만약 개정안이 자율 시행으로 굳어진다면 현재의 환경과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자율 도입 반대자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컴퓨터산업부·황지혜기자@전자신문, go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