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30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인물. 재정경제부에서 30여년 가까이 금융·세제 정책을 다뤄온 김용민 조달청장(54)이 업무를 시작한지도 70여일 남짓 됐다. 매사에 공사가 분명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져있지만, 사석에서만큼은 온화한 표정을 잃지 않는다.
청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느낌을 물었다. “시장에 참 가까이 왔다는 느낌이었습니다.마치 민간 기업에 와서 근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더군요.”
김 청장은 “우리 청은 나라 예산이 아닌 조달 수수료로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며 “물건 팔아서 이익금으로 월급을 주는 일반 기업과 다를게 무엇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최근 그가 고객 중심의 행정 실천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수요 기관과 조달업체가 원하는 서비스를 가장 적기에 적정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명한 전자조달 시스템도 그에게는 인상깊게 다가왔다. 부임 전에는 물자구매 등 일부 조달 과정에서 부조리가 남아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지만, 쓸데 없는 기우였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IT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 영어 이름을 기존 ‘GEPS’(Government E-Procurement System)에서 ‘KONEPS’(Korea ON-line E-Procurement System)로 바꾸고 세계 일류 브랜드화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나라장터 업그레이드=김 청장은 현 전자조달시스템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보강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콘텐츠 보강 및 이용 편의성 보강 방안이 그것이다.
“PMO(Project Management Office)제도를 도입하려 합니다. 그간 이 제도는 시설 및 IT 분야에만 부분적으로 시행되돼 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시스템 장비 등 주요 물품 및 용역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PMO 제도는 조달청 전문 인력이 수요 기관과 공동으로 기획에서부터 설계, 입찰에 이르는 사업 전 과정을 관리하는 제도로, 수요 기관이 고품질의 사업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종합 쇼핑몰 개장시 물품이 4만여 품목에 불과했지만, 연내 10만여 품목으로, 내년에는 15만여 품목으로 대폭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수요 기관이 다양한 물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김 청장은 지난 달 새롭게 개장한 종합쇼핑몰을 통해 정부조달시장의 전자상거래 모범을 제시, 국가 경쟁력을 높여나간다는 복안이다.
상품 정보 품목 확대도 주요 사업 중의 하나이다. 지난해 60만 품목에서 70만 품목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김 청장은 자주 나라장터 사이트에 접속한다. 사용자 입장에서 불편함이 없는지 직접 확인하는 차원이다. 콜센터 현황도 매주 실무자를 통해 체크하고 있다. 철저히 수요자 입장에서 접근, 개선할 점이 없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있다.
◇공직생활중 기억에 남는 보람된 일= 두 가지를 꼽는다. 지난 95년 말 담배에 조세를 부과, 미국에 빼앗겼던 조세 주권을 되찾았던 것이 그 중 하나다.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공격적인 협상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 허락 없이는 담배에 일체의 세금을 부과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필요에 의해 담배에 교육세를 부과해야만 했었고, 때문에 미국과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그 당시 재경부 소속세제과장을 맡았던 김 청장은 “쉽지 않은 협상이었지만, 그 건으로 인해 해방 직후 빼앗겼던 조세 주권을 다시 찾은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1월 도입된 종합부동산세 강화 정책도 사실 김 청장이 직접 진두지휘했다.
“선진국은 보유세와 거래세 비율이 8대2 수준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보유세를 그만큼 많이 물리도록 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거래세와 보유세 비율이 2대8로 책정돼 있습니다. 투기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종합 부동산세를 강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김 청장은 “일부에서 종합부동산세 강화 정책에 대한 반발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조세 정상화를 위해서 앞으로 계속 그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수요자 측면에서 정책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정한 만큼 후회가 없다는 소신 있는 태도다.
◇좌우명=“우리 집 자녀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라’입니다. 간혹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큰 일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 소홀한 사람은 큰 일도 못하는 법입니다. 작은 일을 잘 해야 큰 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김 청장은 “직장에서 사람을 쓸 때도 많이 고려하는 요건”이라며 “조직이 움직이려면 톱니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작은 일에 소홀하면 톱니가 빠질 수 있다”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가 원칙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원들에게도 원칙대로 일할 것을 강조한다. 공무원이 갖춰야할 기본 덕목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 청장은 스스로를 전통적인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자녀들에게 자신은 엄격하게 대하지만, 아내가 자상한 스타일이라 상호 보완이 된다면서 보기 좋은 웃음을 짓는다.
김 청장은 “투명함의 대명사인 전자조달 시스템을 국제 무대로 널리 알려 수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조달 구매력을 활용해 국내 중소·지방기업은 물론 성장 잠재력이 높은 혁신형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