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백종진 한글과컴퓨터 사장(4)

지난해 6월 실시한 한컴 오피스 활용능력평가대회에서 장원급제한 대학생 김성희씨에게 시상하고 있는 필자. 
지난해 6월 실시한 한컴 오피스 활용능력평가대회에서 장원급제한 대학생 김성희씨에게 시상하고 있는 필자. 

(4)인식의 벽을 넘어

 “돈이 있으면 마누라는 바꿔도 소프트웨어는 바꾸기 어렵다”는 우스개가 있다. 그만큼 익숙함에 대한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오피스 제품을 출시했을 때 사람들은 한컴의 무모한 도전쯤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고객들은 실제 업무에 적용하거나 구입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제품의 품질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존에 쓰던 것, 바로 글로벌 기업이 만든 세계 표준처럼 인식되고 있는 외산 오피스 제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출발한 국산 오피스가 시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 길을 열어야 했다.

 ‘익숙한 것을 쓰는 게 편하다’는 고객들의 인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물론이고 한컴의 영업팀과 파트너들은 단순한 제품판매를 넘어선 인식전환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우수한 오피스를 만드는 숙제 못지않게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한컴이 직면한 벽을 넘기 위해 필자는 각종 SW 관련 세미나와 협회, 모임을 발이 닳도록 뛰어 다니기로 결심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장인 내가 직접 영업사원이 되어 외산과 별 차이가 없는 한컴 오피스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연을 해 보이고 사용법도 소개해 나갔다.

 내가 발 벗고 나서자 동시에 영업, 마케팅 등 한컴의 주요 부서들도 힘을 얻어 적극적으로 고객들을 방문해 체험판을 제공했으며, 서울을 비롯해 부산·대구·대전 등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각종 세미나를 개최했다.

 예전의 벤처 정신으로 무장한 한컴의 임직원들이 ‘한컴 오피스’를 쓰면 경제적인 오피스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파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공공·제조·금융·유통·서비스·통신 등 각 분야에서 모인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고객들은 경쟁사와 차별화된 한컴만의 독자적인 계약방식을 제안했고 외산 오피스와 완벽한 호환성에 놀랐다며 좀 더 많은 시연회와 체험행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아래아한글’ 워드프로세서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점차 오피스 제품으로 확산됐고 가격과 품질 측면에서의 경쟁력이 알려져 많은 고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벤처 특유의 발로 뛰는 열정이 통했는지 영업에서 쾌거를 알리는 보고가 잇달아 올라왔다.

 ‘한컴 오피스 2004’ 버전이 중앙 부처 공공기관 최초로 과학기술부의 메인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탑재된 것을 필두로 수많은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및 공사·공단에 공급되기 시작했고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시장에서도 한컴 오피스 구입사례가 늘어갔다.

 특히 지금까지도 매년 성균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디지털 과거시험인 알성시에서 ‘한컴 오피스’가 IT부문 시험과목으로 선택돼 학생들에게 국산 소프트웨어의 우수성을 알리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한컴은 세계 최초로 클릭 한 번에 휴대폰으로 문서를 보내는 기능을 탑재한 첨단 유비쿼터스 오피스를 내놓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외산에 끌려가던 오피스 시장을 반대로 우리가 주도해 나갈 날도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jjb@haan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