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게임사업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룹의 간판격인 SK텔레콤은 물론 SK커뮤니케이션, SK C&C, SK(주) 등 핵심 계열사와 IHQ, 와이더댄 등 관계사에 이르는 방대한 벨류체인(가치사슬)을 총동원, 게임사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SK그룹 인터넷 비즈니스의 핵심 축인 SK커뮤니케이션즈가 최근 ‘SK아이미디어’란 온라인게임 전문 자회사를 설립, 본격적인 사업 진출을 선언함에따라 SK그룹의 행보에 관련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K그룹은 이미 오래전부터 물밑에서 게임사업 진출을 다각도로 추진해왔다. 이동통신시장의 거대 공룡 SK텔레콤을 중심으로 게임 및 관련기업에 대한 직간접 투자를 소리없이 늘려왔다. 그러나, 최근엔 게임사업 진출에 대한 행보가 더욱 구체화, 노골화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에 SK그룹 내 종합 SI업체인 SK C&C가 ‘크리스털보더’ ‘모나토에스프리’ 등을 시작으로 온라인게임 퍼블리싱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이를 방증한다.
‘싸이월드’와 ‘네이트’ 쌍포로 인터넷 업계 최강자 중 하나로 발돋움한 SK커뮤니케이션이 최근 온라인게임 전문 자회사 아이미디어를 설립하며 게임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미디어는 무엇보다 기존 SK 계열사는 물론이고 삼성·KT 등 다른 대기업들이 전담팀이나 별도 조직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게임사업을 전개했던 것에서 벗어나 게임만을 취급하는 전문업체란 점에서 차원을 달리한다.아이미디어의 설립이 게임업계의 핫이슈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사실 이 회사는 아직 실체가 없는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다. 자본금 30억원으로 법인설립되고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사장이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지만, 아직은 기본 조직이나 세부 사업계획이 확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 SK측은 이와관련, “올해 말 정도에나 구체적인 방향이 나올 것”이라며 “향후 실질적으로 아이미디어를 이끌어갈 전문 인력을 외부에서 대거 스카우트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아이미디어가 법인 설립만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근본 이유는 모기업인 SK커뮤니케이션의 방대한 자체 인터넷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풍부한 경험과 SK그룹 전체의 관련 네트워크가 결합될 경우 업계 경쟁구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과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SK커뮤니케이션은 NHN의 ‘네이버’와 함께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이 창조해낸 히트상품 ‘싸이월드’와 메이저포털 ‘네이트’ 등 막강 인터넷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무선인터넷 서비스의 최강자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와 두루 연계될 경우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게임포털 ‘땅콩’의 실패로 이 사업에 아픈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오영규 SK커뮤니케이션 홍보실장은 “그간 캐주얼게임 사이트 ‘땅콩’과 ‘디지몬RPG’ 등을 서비스하며 포털과 게임사이트를 함께 운영한 데 따른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게임 전문 인력을 통한 보다 본격적인 사업을 위해 별도 조직 운영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아이미디어를 설립한 만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이미디어의 사업 방향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현재 게임사업에 진출하는 많은 대기업들이 주로 유통 즉, 퍼블리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아이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개발과 퍼블리싱을 결합한 모델을 지향한다. 단순 퍼블리셔가 아닌 명실상부한 종합 게임업체를 목표로한다는 얘기이다.
SK커뮤니케이션 경영진의 의지가 강력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 실제 SK커뮤니케이션은 유 사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들이 게임사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향후 게임사업을 직접 챙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자산총액 규모가 무려 54조원(2006년 4월기준)대로 성장, LG를 제치고 재계 랭킹 3위의 기업집단으로 도약한 SK가 이처럼 게임사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게임산업개발원이 집계한 게임시장 규모는 연간 8조원대에 달하지만, 이중 상당수가 성인용 사행성게임일 뿐 모바일·온라인 등 핵심 분야는 2조원 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SK가 게임사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배경에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SK의 이런 움직임은 지금 당장 보다는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한 결과로 해석된다”고 강조한다. 사실 세계 IT산업의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지만, 온라인·모바일 등 게임만큼은 20∼30%의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같은 고성장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장 규모 역시 중국,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4대 시장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동통신 네트워크나 솔루션에 주력해온 SK로선 게임이란 콘텐츠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얘기이다.
단순히 게임사업에만 국한하지 않고 게임, 영화, 음악, 교육 등 디지털콘텐츠 전반의 강력한 비즈니스 밸류체인을 형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 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노림수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콘텐츠의 컨버젼스와 원소스멀티유즈가 급부상, 디지털 콘텐츠 전반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기업이 향후 시장 지배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SK가 유선과 무선을 아우르는 강력한 유무선 연동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 경쟁기업의 추격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과 전술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다양한 계열사를 통해 게임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결국 그룹 내 디지털콘텐츠 밸류체인을 강화, 대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아이미디어는 사실상 국내 대기업이 직접 설립한 온라인게임 전문업체 1호란 점에서 그 출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현재 삼성전자, KTH 등 몇몇 대기업이 게임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지만, 전업률이 상당히 떨어진다.
물론 CJ그룹 계열인 CJ인터넷이 대기업 계열 전문업체이지만, 이 역시 M&A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아이미디어의 등장은 대기업의 게임산업 본격 진출의 물꼬를 트는 신호탄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SK가 게임사업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면서 향후 KT, 삼성 등 경쟁 그룹과의 디지털 콘텐츠 시장 전반의 헤게모니 다툼이 보다 치열하게 전개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SK와 게임은 물론 디지털 콘텐츠시장 전반에서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KT의 대응이 주목된다. KT는 올들어 디지털 콘텐츠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고 중견 게임업체를 M&A한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KTH·KTF 등도 게임사업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장기적인 포석을 깔고 게임사업을 소리없이 강화하고 있는 삼성, 그리고 이미 방대한 게임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한 CJ그룹 등도 SK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SK가 선공에 나섬에 따라 향후 경쟁 대기업들의 게임사업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는 결국 전문 벤처중심의 현 국내 게임시장 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