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전자 산업이 점차 레드오션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해답은 융합신산업이다. 우리나라 역시 정부는 물론 기업이나 대학에서도 새롭게 부상한 블루오션인 융합신산업 육성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본지는 산업자원부 및 전자부품연구원과 함께 10회에 걸쳐 융합신산업의 배경과 내용, 의미, 그리고 해외 현황에 대해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융합신산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혔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돼 있음을 확인했다. 본지는 정부와 대학, 기업, 연구기관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한 자리에 모아 융합신산업 육성을 위한 선결과제를 진단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융합신산업을 이끌어나갈 주체들의 지혜를 모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사회
김호기 KAIST 재료공학과 교수
참석자(가나다 순)
김춘호 전자부품연구원장 신미남 퓨얼셀파워 사장 양승욱 전자신문 부국장 윤종언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홍석우 산업자원부 미래생활산업본부장
-김호기 KAIST 교수(사회)=개발도상국의 발전 이론 중에 궁둥이 이론이 있다. 등산에서 길을 잘 모르면 앞사람 뒤만 따라가면 정상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전례를 따라가면 일정한 수준에 오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는 궁둥이 이론을 적용하기 힘들다. 앞서 가던 선진국이 어느새 우리의 경쟁상대가 됐다. 이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를 찾기 위해 미래사회의 변화상에 대해 우선 예측해보자.
◇김춘호 전자부품연구원장=80년대 미국경제가 몰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미국은 지식기반 사회를 미리 예측하고 10년 동안 준비한 결과 경제 부활을 이끌어냈다. 그만큼 미래 사회에 대한 예측은 중요하다. 현재 정보화기기에 이어 디지털 컨버전스가 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주로 IT를 중심으로 한 동종 산업의 융합이다. 앞으로는 융합신산업의 시대다. IT와 BT, NT 등 이종 산업의 융합이 2010년 이후에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윤종언 삼성경제연구소 상무=기술의 변화는 공급자 측면뿐 아니라 사용자 측면의 접근도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된 상품 개발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사용자가 원하는 미래의 트렌드는 개인화, 감성화, 모바일화, 고령화다. 다양한 개성의 표현에 의해 나타나는 개인화는 사용자중심 인터페이스의 중요성이 커지기 마련이다. 감성화는 고품질과 고품위를 추구하고 감성 콘텐츠나 온라인게임이 더욱 각광받게 될 전망이다. 모바일화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이나 콘텐츠와 연결되도록 만들고 고령화는 건강한 생활. 의료서비스, 홈오토메이션의 부상을 가져온다.
◇양승욱 전자신문 부국장=기술도 사람의 요구에 의해 발전된다. 단적인 예로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더 나은 영상 서비스를 즐기려는 수요에서 발전했다. 인간의 삶을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기술의 변화가 맞춰지는데, 이에 따라 기존 기술의 창조적 결합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변화상에서 융합신산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사회=미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질 향상이다. 국민의 생활 수준이 개선되지 않는 기술 발전은 무의미하다. 빠른 변화 속에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생각하는 정책적 변화는 무엇인가?
◇홍석우 산업자원부 미래생활산업본부장=최근의 기술 변화 속도는 참으로 빠르다. 과거와 달리 정확한 예측도 곤란해졌다. 이는 정책 마련의 어려움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정부 역시 최근 정책 마련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그 키워드는 미래 국민의 생활 모습이다. 이를 전제로 정책 수요를 발굴한다. 과거에는 정책에 국민을 맞추려 했지만 이제는 정책의 소비자이자 고객인 국민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다.
- 사회=미래 사회에 대한 개괄적인 전망을 해봤다. 우리는 여기서 융합신산업의 필요성에 대해 한층 확신하게 된다. 이제 보다 구체적인 융합신산업 성공 요소에 대해 다뤄보자.
◇신미남 퓨얼셀파워 사장=사회 전체적으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기술 독점의 시대였지만 융합 시대에는 독불장군이 살아남을 수 없다. 상생의 자세가 필요하다. 연구소, 학교, 기업 등 모두가 열린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아직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무조건 이익을 나눠달라는 말이 아니다. 제대로 된 기술 가치를 인정해주고 일회성 사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진정한 협력자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에 연구개발이나 투자와 관련한 법령도 개정돼야 한다. 투자 인프라 마련 또한 매우 중요하다.
◇윤 상무=융합신산업의 성공요소를 4가지로 정리해보겠다. 그 키워드는 좌뇌보다 우뇌, 순혈보다 혼혈, 수율보다 확률, 독점보다 상생이다. 우선 감성이 중요해지면서 좌뇌뿐 아니라 우뇌를 발달시켜야 성공한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GM은 기술 회사가 아니라 디자인 회사라고 선언할 정도다. 한 우물을 파는 공부보다는 다양한 영역의 섭렵이 필요하고 협력을 도모해야 하므로 순혈뿐 아니라 혼혈도 수용해야 한다. 기업은 한 산업에 의지하기 보다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수율보다는 확률을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초대형 기업도 독식이 아닌 협력 업체와의 협력이 중요해지면서 독점뿐 아니라 상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 사회=기업과 소비자의 시각에서 얘기가 나왔다. 좀 시각을 달리해 연구기관과 정부가 생각하는 성공 요소에 대해서도 들어보자.
◇김 원장=정책과 법 제도 개선이 급선무다. IP TV 산업이 좋은 사례다. IP TV는 모든 기술이 갖춰졌지만 제도가 없어서 시작을 못하고 있다. 이는 엄청난 낭비다. 또 중앙부처가 모든 걸 마련하려면 곤란하다. 민간의 앞선 노하우를 수용하고 부처 간 협력을 가져와야 한다. 여기에 정책 조정 기능 강화가 동반돼야 한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학생뿐 아니라 사회적 재교육이 중요하다. 개인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단 사회에 나오면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며 고갈돼간다. 교육방송을 수능 대비 채널에 그치지 않고 사회 재교육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만 하다.
◇홍 본부장=부처간 협력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한다. 실제 이를 해결할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산자부의 예를 들자면 정통부와 중복 영역이 있다는 지적이 자주 제기됐는데 최근 양 부처 본부장 급의 정책 간담회가 이뤄졌다. 처음 갖는 자리지만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정기적으로 될 가능성 높고 앞으로는 그 대상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융합신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협력도 모색할 수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부처 협력을 위한 물꼬가 터지고 있는 만큼 기대를 가져달라.
-사회=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면 과제다.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결국 구체적으로 당장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시각을 좁혀 융합신산업 발전을 위한 당면과제를 찾아보자.
◇김 원장=많은 사람들이 융합신산업의 성공 요소를 기술에서만 찾는데 이는 편협한 사고다. 융합신산업 창출의 가장 큰 장벽은 금융이다. 국내에는 제대로 된 벤처캐피털이 없다. 과연 성공한 벤처와 일찍부터 파트너십을 갖고 동반 성장해온 벤처캐피털이 있는가? 일부에서는 벤처 정책이 벤처캐피털이 아닌 사채업자만 키워줬다는 말까지 나온다. 제대로 된 투자를 통해 자본을 축적한 벤처캐피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위험 감수와 선진 금융기법이 부재한 탓이다. 금융 선진화가 최우선 과제다.
◇양 부국장=다시 강조하지만 부처간 협력이 중요하다. 융합신산업은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실패의 위험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가 분명한 비전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사공이 많아지면 배가 어디로 가겠는가? 여기에 실제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기관의 역할 조정도 검토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경제산업성 산하 15개 연구 기관이 지난 2001년 단일 조직으로 재구성됐다. 예산과 투자, 성과 검증 등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중복 연구도 방지할 수 있다. 우리도 자리싸움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연구기관의 역할 조정을 고려해볼 시기다.
- 사회=기업 입장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지적과 대안이 기대된다. 과연 무엇부터 손을 대면 가장 효과적인가?
◇신 사장=연구개발 주역 간의 벽이 높다. 기업의 연구소는 고사하고 국책 연구기관까리의 장비 공유조차 요원한 게 현실이다. 엔지니어의 마인드 변화가 필요하다. 내 성과와 다른 사람의 성과가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 금융 제도 변화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제휴, 합병 등에 기술 가치를 인정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지적 자산의 분배도 고려해야 한다. 대개 국책과제의 성과는 주관기관에 예속된다. 함께 한 기업에게도 적당한 권리 행사 기회를 줘야 한다.
◇윤 상무=당면 과제는 규제 완화다. 하나의 예로 당뇨폰을 들 수 있다. 당뇨를 휴대폰으로 검진하는 당뇨폰은 대표적인 융합 제품이다. 그런데 이 제품은 의료기기로 분류됐다. 따라서 판매나 유통이 모두 규제 대상이 됐다. 의사나 약사 이외에는 판매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로 융합신산업에 어울리는 상품을 만들어도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너무나 큰 모순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융합신산업이 꽃필 수 없다.
- 사회=아직도 공급자 위주의 정책이 많은 건 사실이다.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 정부와 기업, 연구소의 역할을 각각 짚어보자.
◇양 부국장=융합신산업 육성은 단일 부처가 아닌 범국가적 프로젝트다. 분야 중복이야 부처간 협력으로 없앨 수 있다고 하지만 너무 넓은 영역을 다루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를 디지털 산업 선진국으로 만든 주역은 수십 개가 아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휴대폰이라는 3개 아이템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정책은 한정된 자원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영역 선택이 필요하다. 또 하나, 기초과학에 대한 외면이 우려된다. 특히 소재 부문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이 절실하다.
◇신 사장=소재 산업 육성에 매우 동감한다. 연료전지를 하고 있지만 소재는 100% 수입이다. 소재 개발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개별 기업이 전담해서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부와 연구기관, 기업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좀 감상적인 얘기지만 자신을 갖는 게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낸 발전은 눈부시다. 긍정의 파워를 발휘한 시기다.
◇김 원장=이미 연구기관 사이에 장벽은 무너지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소와 KISTI, ETRI, 에너지연구소, 전자부품연구원 등 5개 연구기관이 모여서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까지는 연구기관이 주로 받는 역할이었지만 앞으로는 솔선해서 정부와 기업에 요청할 생각이다.
◇홍 본부장=시장 진입의 벽을 낮추는 정책을 펼치려 한다. 새롭게 나타날 수 있는 규제를 미리 발굴하는 작업도 실시하고 있다. 관련 부처가 힘을 모아 융합신기술 발전 전략을 연말까지 수립할 예정이다. 선택과 집중을 위한 신산업 포트폴리오도 마련 중이다. 우리나라는 신기술 흡수 역량이 매우 크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
-사회=바야흐로 융합신산업 시대가 다가왔다. 모든 주역들은 메뉴를 충실히 준비하면 된다. 선택은 시장이 한다. 먼저 열린 마인드를 갖고 협력을 모색하는 기회로 만들자.
정리=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