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최근 IT기업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다. 세계적 강자로 도약하기 위한 짝짓기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합종연횡이 지금도 쉴새 없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협력파트너를 끌어들이고 있는 사례도 있다. 한마디로 이렇게 해서라도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면 생존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졸면 죽는다는 말이 딱 맞는 형국이다.
SK텔레콤과 중국 정부가 3세대 이동통신 기술 개발을 위해 손잡은 것이나 세계 최대 검색엔진 업체 구글과 전자상거래 업체 e베이가 광고·검색 부문에서 포괄적 제휴를 맺은 것도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미 극심한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각양 각태의 기업 간 협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번 두 건의 제휴는 또 다른 차원에서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물론 두 제휴는 기본적으로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기는 하다. 중국 정부가 3세대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한국의 이동통신 사업자인 SK텔레콤을 기술협력 파트너로 선정한 것은 자국 표준인 시분할연동코드다중접속(TD-SCDMA) 기술의 조기 안정화를 위해 취약점인 광대역 무선인터넷 서비스와 관련한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중국이 한국 이동통신 사업자의 기술력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SK텔레콤도 글로벌화 전략에서 중국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또 다른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구글과 e베이의 제휴도 마찬가지다. 이미 야후와도 손잡고 유사한 서비스를 할 정도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구글이 또 e베이를 파트너로 끌어들인 것은 광고시장을 다각화해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실리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상대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검색·광고부문의 강자인 구글과 전자상거래·VoIP 부문의 e베이가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노린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제휴가 세계 인터넷 시장에 몰고 올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두 건의 제휴에 주목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 간 협력양상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종래의 잣대로 본 적과 아군의 개념은 이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구글과 e베이가 올해 들어 상대시장 영역을 호시탐탐 노렸던 점을 감안하면 비록 첨예한 경쟁관계일지라도 단기적 이익을 위해 적과의 동침을 서슴지 않겠다는 인터넷 업계의 생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또 국가적 사업에도 이제 국가나 민족이니 하는 국적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나라 안에서 사업을 일으키고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야 한다는 민족주의는 이제 흘러간 노래가 돼 버린 듯하다. 중국이 자국 표준기술 안정화에 외국 통신사업자를 기술협력 파트너로 선택한 것을 보면 그러하다. 특히 그동안 중국의 대외개방 정책을 감안하면 무한 경쟁시대에 경쟁력의 핵심이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상대가 버거우면 공동개발 또는 전략적 제휴를 택하고 상대가 약하면 서슴없이 먹잇감으로 보고 먹어치우기도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무엇보다 이들 제휴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글로벌 파트너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 확고한 강점분야의 보유이고 보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계 시장에 나설 만한 강한 기업이 많아야 이런 제휴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생존이 가능한 시대다. 그만큼 우리 기업들은 자신 있는 분야를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치와 매력점이 있어야 세계 기업과 어깨동무도 가능하다. 정부의 IT정책이나 기업정책도 이런 흐름에 맞도록 바꾸어야 할 때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