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백종진 한글과컴퓨터 사장(6)

아시아눅스의 주인공인 일본 미라클리눅스, 한글과컴퓨터, 중국 홍기리눅스(왼쪽부터) 대표이사들이 지난 2004년 10월 코엑스에서 아시아눅스 출범 선포식을 가졌다.
아시아눅스의 주인공인 일본 미라클리눅스, 한글과컴퓨터, 중국 홍기리눅스(왼쪽부터) 대표이사들이 지난 2004년 10월 코엑스에서 아시아눅스 출범 선포식을 가졌다.

(6)불모의 리눅스 시장 개척 

 한컴의 SW 사업영역은 거의 필연적으로 거대 외국 SW기업과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워드프로세서인 ‘아래아한글’이 그렇고 오피스 패키지 시장 또한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유일한 토종 오피스로서 홀로 시장을 지켜내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갖고 있는 만큼 필자는 한컴 경영을 책임지게 된 초창기부터 우리가 자체 운용체계(OS)를 보유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간직하고 있었다. 때마침 이미 전세계에는 독점이나 마찬가지인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윈도 운용체계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컴퓨팅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공개SW 활성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2004년 봄, 필자는 마침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던 일본 미라클리눅스사와 중국 홍기리눅스사가 주도하는 ‘아시아눅스 프로젝트’에서 한국 파트너를 찾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미 공개SW와 리눅스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사업가적 입장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필자는 한국의 우수한 리눅스 개발 인력과 경험에 한컴의 브랜드력, 소프트웨어 유통·서비스 노하우가 결합 된다면 국내에 리눅스 붐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확신을 가졌다.

 특히 ‘아래아한글’로 세운 우리 SW의 자존심을 리눅스라는 운용체계로 확대해보자는 욕심도 결심을 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당시, 국내 리눅스 사업 환경은 1세대 리눅스 업체들이 사업적으로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나마 작은 시장도 외산업체가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국내의 모 회사가 아시아눅스 파트너로 이미 선정되어 곧 발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즉시 무언가 손을 써야 할 상황이었다. 곧바로 아시아눅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내부에 리눅스 인력이 없었던 상황에서 당시 BI사업 본부장을 맡고 있던 조광제 상무에게 국내 리눅스 고급 인력을 파악,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 상무는 당시 국내 최고의 리눅스 인력을 보유하고 있던 코아리눅스사를 방문했다. 협상을 통해 코아리눅스 자진폐업과 함께 12명의 리눅스 고급 인력을 성공리에 한컴으로 영입했다. 이제, 아시아눅스 한국 파트너사로 선정되는 일만이 남았다.

 2004년 7월. 필자는 일본 삿포로로 날아갔다. 한중일 3개국 OSS 포럼에 참가해 담판을 짓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삿포로에서 미라클리눅스의 삿토 사장, 홍기리눅스의 크리스 자오 사장을 만나 한글과컴퓨터사의 역량과 필자의 사업에 대한 의지를 진솔하게 표명했고 마침내 설득할 수 있었다.

 이후 한컴에 대한 실사를 거쳐 아시아눅스 프로젝트 컨소시엄 2개 회사와 한글과컴퓨터를 한국의 파트너로 최종 선정한다는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게 됐다. 감개가 무량했다. 이제 우리도 세계 SW 시장에 당당히 어깨를 견주어갈 수 있는 아시아 표준 리눅스 운용체계를 갖게 된 것이었다. ‘OS에서 응용 프로그램까지’ 그리고 ‘서버에서 데스크톱까지’. 한컴의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jjb@haan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