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 사상 첫 경영학 박사 출신의 기관장이 탄생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양병태 원장(60)이 주인공이다. 양 원장은 이공계 출신이 아니면서도 과학기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장 자리에 처음 올랐다.
과학기술계나 출연연 입장에서 보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는 셈이다. 인문계가 ‘이공계 텃밭까지 밀고 나왔다’거나 ‘R&D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등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이에 대해 양 원장은 “출연연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 시스템의 효율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는 만큼 일단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봐 달라”며 “KISTI의 경우는 순수 R&D보다는 R&D 서비스에 주력해온 기관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나름의 입장을 정리했다.
◇“방향 옳으면 과감히 총대 멜 것”=양 원장은 현 출연연 실태에 대해 “너무 많은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투자만 해오고 연구 성과가 미약한 부분을 과감히 ‘손’털고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관장이 젊을 경우 차기도 내다봐야 하기 때문에 과감한 경영을 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을 수 있지만 저는 아닙니다. 차기 기관장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 합의만 이루어지면 과감하게 털 것은 털고, 핵심만을 이끌어 가고 싶습니다.”
양 원장은 이를 위해 현재 사업 검토반을 가동 중이다. 검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일부 투자 효율이 떨어지는 과제는 정리하고, 될성 부른 과제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적극 밀어줄 방침이다.
특히 방향이 옳다고 판단이 들면 총대를 스스로 매겠다는 것이 양 원장의 소신이다. 겉보기에는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인상이지만, 외유내강형의 보이지 않는 강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정보 대기업 제공 기억남아=70∼80년대 대기업이 한창 커 나가던 시절, 양 원장은 기업의 신제품 개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시장 동향을 분석하고 앞으로 뜰 기술을 예측해 대기업에 정보를 제공하면, 2∼3년 뒤 그 기술이 신제품으로 만들어져 나오던 일과 특허분쟁에 휩싸인 기업을 위해 밤새워 특허정보를 찾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심혈을 기울여 전달한 시장 분석 정보가 공산품으로 쏟아져 나오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는 양 원장은 LG전자의 냉장고와 에어컨, 제일모직의 기능성 옷감 등이 모두 수출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KISTI도 앞으로 기업에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를 하는 방향으로, ‘고객 가치 극대화’와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환경조성이 절실하다는 것이 양 원장의 지론이다.
“정보의 질은 높이면서도 시간과 비용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효용 극대화입니다. 이제는 외형을 불리기보다는 내부 정리를 통해 효용 극대화를 꾀할 때라고 봅니다.”
이와 함께 양 원장은 그동안 큰 성과를 낸 슈퍼컴퓨터 활용 R&D나 e-사이언스 등 노른자 과제를 집중 지원하는 한편 ‘국가과학기술 조기 경보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KISTI의 ‘조용한 혁신’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다양한 경험이 경영 큰자산=시험대에 올라 서 있는 양원장은 학창시절과 첫 직장 시험에서 수석을 놓쳐보지 않을 정도로 ‘시골서는 잘나가던’ 영재라는 말을 듣고 성장했다.
요즘에는 볼 수 없지만 전주사범병설중학교에 입학했을 땐 동네 어귀에 입학 축하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임실서 5년 만에 처음 중학생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해성고 시절엔 수석으로 입학과 졸업을 했다. 한때 입시학원을 경영하기도 했고,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KORSTIC)에 들어갈 땐 응모자 250명을 물리치고 유일하게 선발됐다.
양 원장은 격식을 따지기보다는 내실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출퇴근길 관용차 문도 스스로 열고 내린다. 가끔은 운전도 손수 한다. 성격도 털털한 편이다. 직원들이 편안해 하는 이유다.
“R&D만 해온 사람은 균형감을 잃고 한쪽 방향으로 치우칠 우려감이 큰 것도 사실 아닙니까. 과학기술 정보 분석 기관에 재직한 기간만 30년 가까이 됐습니다. 이 정도 경력이면 이공계 대학 출신이 아니라고 괄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특정 분야에 몰입하기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전체의 틀에서 세밀한 부분을 들여다 보겠다는 양원장의 경영철학이 어떻게 빛을 발할 지 기대된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