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파문 `一波萬波` 확산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바다이야기’ 사태가 그야말로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바다이야기’를 둘러싼 정부와 관계 기관, 그리고 관련 사업자들의 온갖 편법과 비리가 마치 양파껍질 벗겨지듯 하나둘씩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도박공화국’이란 오명의 주범이라는 ‘바다이야기’ 사태는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는 결국 총체적인 정책 부실과 구조적 문제, 여기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투기심리가 합작해낸 ‘예고된 파국’”이라고 진단한다.

성인용 사행성 게임이 사회 문제화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곪을대로 곪아서 마침내 터지고 만 것일 뿐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2004년 당시 성인 게임시장을 석권했던 ‘스크린 경마’를 비롯해 지난해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이 독버섯처럼 확산되면서 도박게임으로 인한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져왔다.

특히 ‘바다이야기’로 수 십, 수 백억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우후죽순 신규 사업장이 늘어나 급기야 주택가나 대로변까지 버젓이 진출했다. 그런가하면 이 게임 개발사인 에이원비즈가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번지면서 ‘제2, 제3의 바다이야기’를 추구하며 성인용 사행성 게임을 개발하는 업체가 줄을 이었다. PC방을 이용한 신종 도박장과 카지노빠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쯤되면 ‘대한민국=도박공화국’이란 말도 결고 지나친 말은 아니다.‘바다이야기’ 사태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최근 이 문제가 정치쟁점화하는 양상이다. 국정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는 소위 ‘네 탓’ 공방이 치열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정부와 관련 기관의 부실한 정책이 빚어낸 人災’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만큼 사행성 게임과 관련된 정부의 현 정책과 제도는 헛점 투성이란 얘기이다. 물론 ‘바다이야기’의 경우 심의나 서비스 과정에서의 온갖 비리가 난무하고 일선 사업주들의 불법 개·변조가 사태를 확산시켰지만, 법과 제도적인 맹점이 이와같은 대형 사고를 유발했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않다.

무엇보다 ‘바다이야기’ 등 릴게임장은 사실상 도박장인데도 정부의 ‘아케이드산업’ 진흥과 규제 완화 라는 대의 명분 아래 ‘특별 보호’를 받았다. 성인 게임장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인 것. 설상가상 정부는 등급 분류, 상품권 등 이들 게임을 제도권내로 흡수함으로써 ‘면죄부’까지 달아주었다. 실제 현재 보급된 ‘바다이야기’의 경우 불법 개·변조로 인해 도박기계로 변모했지만, 애초에 게임기 자체는 심의를 필한 적법한(?) 성인오락기계들이다.

제도적으로 사행 요소를 막기위한 정부의 ‘가이드라인’도 철저히 유명무실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의 사행성 게임 기준 자체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우선 ‘시간당 투입 9만원, 산출 20만원’이란 기준은 자동 진행은 현재 무용지물이다. 재떨이나 이쑤시개 등으로 한사람이 여러대의 기계를 동시에 돌릴(누를)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파하지 못한 탓이다.

한 사람이 4대를 돌리면 시간당 36만원까지 배팅을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이같은 폐단을 줄이기 위해 직접 기계를 손으로 잡지않으면 진행이 어려운 점은 주목해 볼만하다.



사행성 게임장에 날개를 달아준 것으로 평가받는 상품권의 환전 행위를 단속할만한 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아이러니다. 국민의 정부시절인 99년 규제개혁 차원에서 관련 법이 폐지된 때문. 백화점 인근에서 상품권을 환전하는 것과 같은 셈. 한때 성인 게임장을 운영했다는 J씨는 “상품권과 환전소를 통해 사실상 ‘현금박치기’로 도박을 하는데도 처벌할 법 조차 없다는 것은 명백한 방조죄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부실한 사후관리와 솜방망이 처벌도 이번 사태를 ‘인재’에 비유하는 근본 이유다. 현재 성인게임장에 대한 사후관리 기관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사전 심의를 내주는 영등위가 사후관리까지 맡는 꼴이다.

문제는 사후관리 인력이 태부족해 불법과 편법을 일삼는 일선 사업장을 사실상 방치해왔다는 것. 영등위측 스스로도 “사후관리가 효과를 거두려면 검·경의 특별 단속이 수반돼야하는데 영등위로 사후관리 권한이 이양된 이유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다.

아케이드업계 한 관계자는 “제대로 사후관리를 하려면 1일 5개사업장씩 실사를 한다해도 최소 20개조 이상의 사후 관리팀이 필요하다”며 “현실적으로 영등위가 사후관리를 맡는 것은 하지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자연히 승률 조작, 연타 등 불법 개·변조가 일반화된 지 오래다. 게임기 제조업체 역시 ‘심의용’과 ‘시판용’을 따로 제작하는 편법이 난무한다.

설령 단속에 적발된다고 해도 벌금형이나 심한 경우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솜방망이 처벌도 성인 게임장의 도박장화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실제 아케이드업계에선 ‘적발되도 벌금 좀 내면 그만’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게다가 많은 사업장들이 이름뿐인 이른바 ‘바지사장’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단속이 된다해도 초범이란 이유로 경미한 처벌을 받기 일쑤다.

그러나, 이번 ‘바다이야기’ 사태의 보다 본질적인 원인을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심리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적지않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가기 마련이라는 것. IMF 이후 벤처붐과 증권시장의 대활황 이후 이른바 ‘대박증후군’이 확산되면서 경마, 경륜, 로또 등을 이용한 ‘한탕주의’가 만연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PC방 도박으로 적지않은 돈을 잃었다는 A씨(48)는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직자가 늘어나고 젊은층을 중심으로 투기에 관심이 높다”면서 “성인 게임장의 경우 집근처에 있어 더욱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결국 이번 ‘바다이야기’사태는 정부의 失政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결합돼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보다 강력하면서도 지속적인 규제를 통해 도박게임을 발본색원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이를위해선 우선 청와대, 정부, 여야, 관계기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책임 공방’을 중지하고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도박게임을 뿌리뽑을 수 있는 묘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한다.

이번 사태가 게임산업 전체로 확산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누가뭐래도 ‘바다이야기’와 같은 도박게임과 온라인게임 등 일반 게임과는 뿌리부터 다르다. 그런데도 넓은 의미에서 같은 게임으로 분류돼 게임업계 전체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사행성 게임’에서 게임이란 꼬리표를 떼고 게임산업진흥법상에서 아예 분리해야한다는 얘기도 그래서 설득력있게 들린다.

게임산업협회 임원재사무국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게임산업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단체들이 게임중독, 청소년 문제, 심의 등으로 관심을 몰아가고 국회의원과 정책입안자들이 이같은 여론에 호도될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일반 게임은 도박게임과는 엄연히 다른 ‘차세대 성장동력’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바다이야기’ 사태로 게임산업이 이미지 실추 등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다”면서 “비온뒤에 땅이 굳듯이 범정부차원에서 이번 사태를 철저히 규명하고 치밀한 후속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게임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도록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