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소프트 김영만(45) 회장은 우리나라 게임 역사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다. 불세출의 히트작 ‘디아블로2’ ‘스타크래프트’ 등을 국내에 유통시켜 PC방 문화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또 패키지 게임에서 온라인으로 선회해 현재 ‘그라나도 에스파다’ ‘팡야’ ‘신야구’ ‘탄트라’ ‘네오스팀’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한빛소프트가 플래그십 스튜디오와 함께 준비하고 있는 ‘헬게이트 런던’은 세계적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대작이다. 현재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이기도 그를 만나 온라인게임의 비전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외국 진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트너사 선정입니다. 최근 온라인게임들을 외국으로 보내면서 새삼 느끼고 있어요. 계약금이나 이런 금액의 문제는 두번째입니다.”
김영만회장은 담담히 말했다. 오랜 경험과 통찰력에서 배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패키지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여전히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는 한빛소프트의 수장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최근 중국에선 ‘네오스팀’이 동접 10만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그라나도 에스파다’ 또한 엄청난 액수로 수출 계약이 체결된 바 있다.국내외 유저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으고 있는 ‘헬게이트 런던’도 차분히 진행되고 있다. 올 연말 국내와 해외에서 공개될 예정인 이 작품은 사실상 ‘디아블로 3’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전세계 유저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김회장은 이러한 성공의 토대는 어떤 회사를 파트너사로 선정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중국에서 서비스하기 위해 수많은 중국 회사들이 달려 들었고 금액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제의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서 더나인을 선택한 이유가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적극적인 자세가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온라인게임은 상품이 아니라 서비스다.
그래서 한번 돈 받고 넘기면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함께 걸어가야하기 때문에 파트너사의 마인드와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회장은 ‘네오스팀’의 성공적인 출발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고 말했다.
“저희도 파트너사에게 모든 걸 맡기지 않습니다. 우리 개발자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죠. ‘네오스팀’ 개발자들을 아예 중국으로 보내 버릴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온라인게임이란 개발사와 현지 퍼블리셔가 하나로 힘을 모아 서비스를 해야하고 그러면 틀림없이 유저들이 인정하고 몰린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김회장은 일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의 경우 올해와 내년이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주도권을 잡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 유저들의 특성을 알아야 하는데, 충성도가 높아 동접에 비해 매출은 결코 낮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자연스럽게 ‘헬게이트 런던’으로 이어졌다. 김회장은 이 작품이 미주 지역과 유럽 온라인게임 시장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플래그십 스튜디오와 조인트벤처 핑제로를 설립한 것도 이러한 목적이 컸다.
‘디아블로’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빌 로퍼와 개발자들이 지금까지도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핑제로를 통해 플래그십스튜디오와 한빛소프트는 향후 모든 게임에 대한 유통과 서비스를 함께 하게 된다. 이제 김회장에겐 글로벌 네트워크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 하나의 작품만 터지면 세계적인 퍼블리셔로 한 단계 올라서는 것이다.
“국내에 한빛소프트같은 회사는 없다고 자부합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글로벌 퍼블리셔를 목표로 했고 지금 차분히 올라서고 있습니다. 무늬만 세계화고 숫자 놀음으로 포장하지 않지요. 알맹이가 가득 차 있습니다.”
흔들림없는 당당한 말이었다.이런 김 회장도 국내 상황에 대해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게임업체들이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답답합니다. 기술은 금방 따라 옵니다. 실제로 대만 업체들이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현실화되고 있어요. 일본은 가만히 있는 줄 아십니까. 우리나라 개발자들은 꾸준히 한 우물만 파야하는데 그것이 걱정입니다.”
그는 조금만 성공하면 창업해서 한몫 잡으려는 일부 개발자의 태도가 큰일이라고 했다. 대만의 기술자들이 중국 업체로 흡수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일본의 콘솔 업체들도 온라인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너무 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뚜렷한 경쟁력이 없어질 것도 같다는 것이 그의 근심어린 목소리였다. 하나의 작품에 초기 기획부터 참여해 상용화까지 모두 경험한 개발자가 극히 드둔 국내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E3와 도쿄게임쇼의 마지막이 올해가 되고 말았어요. 우리가 온라인게임 강국이라지만 이대로 가면 얼마나 지속될까요. 눈앞의 이익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보는 자세가 아쉽습니다.”
<김성진기자 har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