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MSL(MBC게임스타리그)에 나를 만나지 마소” 지난 17일 저녁 MSL 조지명식장에서 황제 임요환은 입대를 앞둔 각오를 이렇게 표현했다. 상대가 누구든 반드시 이기고 일반인 자격으로는 마지막 개인리그인 9차 MSL에서 우승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고는 천적 강민을 지목했다. “강민선수도 맞대결을 굳이 피할 것 같지 않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전투의욕을 불살랐다.
강민은 상대전적 3대 11의 열세를 보여왔던 임요환의 최고 천적중 한사람. 당연히 실리를 먼저 생각한다면, 피하는게 상책(?)이겠지만, 임요환은 역으로 첫 상대로 천적을 지목한 것이다. 특히 MSL의 리그 특성상 첫 경기 승자와 패자는 가는 길이 다르다. 패자조는 험난한 여정의 연속이다. 자칫 패자조로 밀려 또다시 패한다면 허무하게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 지난 6년간 e스포츠계 정상을 지켰던 그의 일반인 자격으로서의 마지막 개인리그에 임하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누구보다 강한 환제 특유의 정신력 덕택이었을까, 임요환은 24일 저녁 열린 9차 MSL에서 천적 강민을 14분만에 간단히 셧아웃시켰다. 당대 최고 전략가이자 각각 테란과 프로토스 종족을 대표하는 최고 스타들의 대전이란 점에서 경기전부터 ‘세기의 대결’로 불리웠지만, 경기는 의외로 일방적이었다.
초반 상대의 노게이트 더블 넥서스 전략을 간파한 임요환은 곧바로 기습 트리플 커맨드로 맞대응했다. 강민의 정찰이 이루어졌다면 단번에 밀릴 수 있는 도박이었지만, 끝내 정찰을 허락하지 않고 3커맨드를 풀가동하며 자원을 모았다. 이후 임요환은 안정된 자원을 바탕으로 팩토리를 증설하고 물량을 확보한뒤 한방 러시로 강민의 앞마당을 압박했다. 강민이 부랴부랴 캐리어로 전환했지만 임요환의 다수의 벌처, 골리앗, 탱크 등 매카닉 조합앞에 속수 무책, 곧바로 gg를 쳤다. 임요환은 특유의 왼손주먹 세레모니로 파이팅을 보였다.
사실 이번 MSL은 황제 임요환에게는 매우 뜻깊은 대회다. 연말 공군 전산특기병으로 입대할 예정인 임요환으로선 사실상 마지막 개인리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군인 자격으로 팀리그인 프로리그엔 참여할 수 없지만, 개인리그엔 출전의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연습하는데 한계가 많아 다시 개인리그 본선에 서는 것은 쉽지않은게 사실이다.
더욱이 최근 신예 프로게이머들의 급부상, 스타리그 본선에 오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다. 임요환을 능가하는 최고 실력을 자랑했던 괴물 최연성이 양대 개인리그 예선으로 추락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전문가들은 “만약 이번 MSL에서 임요환이 시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상당기간은 양대 스타리그 본선에서 그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요환이 유독 MSL에서 만큼은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도 이번 MSL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사상 유일하게 2연속 우승, 최다승, 6차례 결승 진출 등 숱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MBC게임 스타리그에선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상대적으로 라이벌 이윤열과 최연성은 각각 3회 우승한 바 있다. e스포츠계를 대표하는 그로선 ‘반쪽자리’라는 오명을 씻고 싶은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임요환은 특히 일반인 자격으로는 마지막인 이번 MSL에서 정상에 올라 화려한 선수 생활에 또 하나의 기념비를 쌓고 싶은게 사실이다. 항상 큰 경기에 강하며, 중요한 고비마다 결승에 올라 명승부를 연출했던 임요환이 MSL 첫우승이란 입대 선물을 받을 수 있을 지 60여만명에 달하는 그의 팬클럽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