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6부:세계는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다(8)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 이어 지난해 3월 취임한 케빈 마틴 FCC의장과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왼쪽 두번째 부터)과 환담하고 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 이어 지난해 3월 취임한 케빈 마틴 FCC의장과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왼쪽 두번째 부터)과 환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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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상)-FCC 

미국의 통신과 방송 규제의 중심에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있다. 70여년 전인 지난 34년에 통신과 방송을 모두 관장하는 기관으로 설립됐다. 통신과 방송을 한 기관에서 관장하다보니 규제기관 간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불필요한 낭비요소가 적다. 시장 상황이 변하면 내부 조직정비를 통해 발빠르게 대처해오며 지금의 FCC로 자리잡았다.

FCC는 지난 96년 매체간 경계를 허물고, 소유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촉진 등 기존의 커뮤니케이션법을 대폭 개정한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을 발표했다. 이어 99년에는 산업지형과 미디어환경이 변화하는 21세기를 대비해 조직개편도 단행하며 융합시대를 준비해오고 있다. FCC의 이러한 행보는 규제기구 개편, 법제정비 등을 놓고 관련부처 간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이번 회에서는 미국과 FCC가 통방융합에 대비하는 전략을 살펴본다.

◇FCC의 설립=FCC는 34년 커뮤니케이션법에 의거해 설립됐다. 당시 설립 취지는 유선과 무선을 아우르는 통신산업을 공익적인 면에서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FCC는 행정부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규제위원회의 위상을 지니며, 일반적인 행정 권한 뿐만 아니라 규칙을 제정하는 준입법권과 준사법권을 행사하고 있다. 설립 당시부터 통신과 방송을 모두 관장하는 기관으로 출범했는데 이는 당시 방송을 무선통신의 한 종류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FCC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동의를 받아 결정된다. 임기는 5년이며, 위원장은 위원 중 1인을 대통령이 지명하여 결정한다. 위원의 교체는 업무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1년에 한 사람씩 임기가 만료되는 시차조절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한국에도 도입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효성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업무 연속성을 위해 9명의 방송위원을 순차적으로 교체하거나 3년인 현재의 임기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게 그것이다.

◇FCC의 설립 목적과 관심영역=FCC는 주로 통신분야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됐으며, 그 중에서도 연방차원의 규제를 주로 담당한다. 즉 합리적인 요금 산정에 따른 신속한 통신 서비스 제공, 통신의 공적 규제, 통신의 이용에 따른 생명과 재산의 안전증진 등이 주요 임무다. 방송과 관련해서는 방송도 무선통신의 하나라고 파악하는 점이 특징이다. 때문에 방송의 문화적 성격과 언론매체로서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보다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과 더 좋은 품질의 서비스 제공에 역점을 두고 있다.

◇융합 대비한 조직개편=FCC는 지난 99년 기술발전과 시장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6국, 10실 체제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개편에서는 정책집행 기능을 한 곳으로 집중하기 위해 정책집행국을 신설하고, 소비자·정부 사무국을 만드는 등의 변화를 시도했다. FCC가 밝힌 개편의 방향은 △정보화 시대의 선구자 역할 △미디어 융합 시대에 걸맞은 조직 및 구조 재정비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평면적이며 기능적인 조직으로 탈바꿈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유지·발전 등으로 요약된다.

사실 FCC는 기존에도 시장 및 산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무처 조직을 유연하게 조정해왔다. 지난 94년 케이블과 위성방송의 영향력 증대에 따라 ‘케이블 서비스국’과 ‘무선통신국’을 신설한 것이 그 예다.

이번 개편에 따른 6개국은 △유선경쟁국 △정책집행국 △무선통신국 △미디어국 △소비자·정부 사무국 △국제국으로 분류된다.

◆FCC의 융합 대비전략

미국은 지난 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을 개정하며 새로운 미디어환경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주요내용은 업체간 경쟁강화와 소유규제 완화였다.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소비자 복지 증진이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

이어 최근 본격적인 통신과 방송의 융합환경을 대비해 새로운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새 개정안에는 광대역인터넷 서비스와 인터넷전화(VoIP) 등에 대한 내용이 모두 포함될 전망이다. 미국통신업계는 기존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이 인터넷전화(VoIP), 이동통신, 광대역서비스 등 지난 10년간의 기술혁신을 따라잡지 못한다며 개정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미 하원 상무위원회는 77쪽에 달하는 새 텔레커뮤니케이션법 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당시 공화당 소속 조 바톤 상무위원장은 “새로운 통신서비스가 낡은 생각과 규제에 얽매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초안은 전체적으로 통신산업에 대한 정부의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친기업적인 성향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통신법의 테두리 안에 광대역 전송서비스와 광대역 비디오 서비스, VoIP 서비스를 새롭게 규정한다. 광대역 전송서비스에는 DSL과 케이블 공급자도 동일한 사업군으로 포함된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통신서비스의 요금, 운영규칙 등은 연방법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 FCC나 어떤 정부기관도 임의로 광대역 통신서비스를 통제할 수 없다.

▲광대역 서비스사업자들은 자신의 고객이 어떤 콘텐츠에 접속하든지 어떤 통신도구를 사용하더라도 방해할 수 없다.

▲VoIP사업자들은 사용료를 네트워크 운영자들과 협의해야 하지만 실패할 경우 FCC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다.

▲모든 VoIP사업자들은 FCC 규정에 따라 911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모든 가입자에게 911접속 가능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911 네트워크 운영자는 VoIP사업자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네트워크를 임대해야 한다.

▲주정부와 지방정부도 민간업체와 동일한 규제를 받을 경우 자체적인 광대역기반 통신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이러한 개정안 초안이 발표되자 미국 통신업계와 많은 전문가들은 친기업적인 안에 대해 환영했다.

◆한국의 방통융합 논의에 있어 FCC 모델의 시사점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윤호진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방송위원회는 미국의 FCC를 기본 모델로 하여 설립됐다”며 “하지만 한국의 방송위원회는 설립 모델로 상정한 미국의 FCC와는 여러 측면에서 유사성보다는 차별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방송과 관련된 법 체계가 서로 다르다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미국은 미국 헌법이 연방의회에 전파관할권을 부여했고, 연방의회는 이 권한을 활용해 커뮤니케이션법을 제정하여 이를 근거로 FCC를 설립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법규명령에 해당하는 ‘규칙과 규정’을 비교적 자유롭게 제·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헌법은 방송위원회에 법규명령을 위임하고 있지 않다.

규모면에서도 FCC와 방송위원회는 큰 차이를 보인다. FCC의 직원 수는 2000여명에 달하는 반면 방송위원회는 이이 10분의1 수준인 200여명에 불과하다. 물론 FCC는 방송과 통신 분야를 모두 총괄하지만, 방송관련 업무만 비교해도 200명은 FCC에 비해 부족하다. 또 FCC는 단일기구이면서도 유관기구간 역할조정과 기능배분이 이루어진 의사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방송위원회와는 차이점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FCC와 국내 기구들이 가진 차이로 인해 한국의 상황에 맞게 FCC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호진 책임연구원은 “방송과 통신을 통합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미국 FCC 모델은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합적 규제긱의 성격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다”며 “한국과 미국의 미디어 환경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검토하고 수용 가능한 지점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