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3차 본협상이 5일 시애틀에서 시작된 가운데 미국 측이 통신 분야에서 현재 한국이 유지하고 있는 통신 역무 구분을 없앨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통신 역무 구분 폐지는 미국 측 요구에 앞서 우리 정부도 전반적인 통신 규제 틀을 새로 짜기 위해 검토중인 사안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사업법)에 따르면 국내 통신 역무는 기간통신사업과 별정통신사업, 부가통신사업 세 가지로 구분된다. 지난 1996년 27개 신규 통신사업자가 선정되면서 만들어진 사업법은 ‘설비(네트워크) 기반 경쟁’이라는 통신 규제 틀의 기본 출발점으로서 지난 10년간 그 골격을 유지해왔다.
이를테면 기간통신사업자는 기본적으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정부가 정해 놓은 기간역무(인·허가) 사업을 하는 사업자를 뜻한다. 이에 비해 별정통신사업자는 기간통신 역무를 제공하되 네트워크를 보유하지 않고 있는 경우다. 또 부가통신사업자는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서비스 역무도 기간 역무에 포함되지 않는 사업을 영위하는 자다.
미국 측의 역무 구분 폐지 요구는 일단 진입 규제를 완화하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역무 구분이 없어지면 대부분의 서비스가 사후 규제로 전환되기 때문에 지분 제한을 제외하고는 외국 기업의 진출은 과거에 비해 용이해진다.
반면에 우리 정부가 스스로 역무 구분 변화 필요성을 거론하는 이유는 좀 더 현실적이다. 현행 틀에서는 신규 서비스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방송계에서 IPTV와 같은 통·방 융합 서비스를 부가서비스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도 기존 역무 틀에 적용하기 모호하다는 데서 기인한다.
기존 역무 내에서 일어나는 혼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동통신 및 인터넷전화(VoIP) 활성화로 인해 사실상 시외전화 역무는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부가서비스였다가 기간통신 역무로 편입된 VoIP는 서비스 성격상 유선전화와 동일한 전화 서비스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체서비스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고 현재 역무 구분이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볼 순 없다. 실제 부가사업자와 별정사업자들은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편적 서비스 분담금, 법 위반 시 과태료 등 다양한 부분에서 기간통신사업자에 비해 혜택을 받고 있다.
약관 인가가 아닌 신고·고시(등록) 등이 주는 영업적 혜택 역시 기간사업자에 비해 유리한 편이다. 케이블TV사업자들이 기간사업자 편입을 2년간 유예받으면서 올렸던 영업 성과가 단적인 사례다.
역무 구분이 폐지되면 결국 제공 서비스를 기준으로 동일한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 획정에 따라서는 전면 경쟁도 불가피해진다. 또 서비스 경쟁 위주로 가면 시설 투자에 대한 메리트가 낮아져 가뜩이나 위축된 네트워크 투자를 축소시킨다는 점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이 댁내광가입자망(FTTH)에 대해서조차 망 개방을 의무화하다가 최근 들어 이를 다시 유예한 이유 역시 위축된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역무 분류는 엄격히 말해 행위 규제가 아닌 진입 규제라는 측면에서 사후 규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네트워크 기술 발전이나 광대역융합망(BcN) 시대에서 역무 구분은 시장 획정에서 모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어느 제도가 더 우수하다기보다는 설비 기반이든 서비스 기반이든 각국의 시장 발전에 맞게 선택할 문제”라며 “다만 현재 역무 구분이 변화된 시장 환경을 수용하는데 나타나는 한계점을 찾아 개선하는 것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