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칼럼]가을 그림자

 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한낮 햇살은 여전히 따갑다. 부챗살 구름이 정겹다. 이런 날씨라야 오곡이 알차게 여문다. 과일도 단맛이 더하다. 하늘은 에메랄드 빛이다. 해맑은 어린아이 얼굴 같다. 하늘에 근심걱정이 있을 리 없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더워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사무실에서는 냉방기를 켜야 했다. 이제는 냉방기도 껐다. 긴소매를 입은 사람도 간간이 보인다. 분명한 가을이다.

 가을은 거두는 절기다. 봄에 심고 여름에 키운 농작물을 수확한다. 가을은 우리에게 땀의 소중함을 무언으로 보여준다. 일하지 않고 수확할 수는 없다. 땀 흘리지 않고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日日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에 백장이라는 고승이 있었다. 그는 90세가 돼서도 날마다 일을 했다. 제자들이 안쓰러워 농기구를 감추자 스님을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며 하루를 굶었다는 것이다.

 9월이지만 음력으로는 7월이다. 예부터 농촌에서는 ‘어정 7월’이라고 했다. 수확기 전이어서 여유있게 어정거릴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 경제가 어렵다. 서민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다. 청년 실업자가 넘친다. 취직하는 게 곧 효도라는 말도 나돈다. 취업전선도 양극화가 심하다. 대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찾기 위해 세계를 누빈다. 거액을 주고라도 스카우트하기 위해 CEO들까지 나섰다.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못 구해 아우성이다. 대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다 쓴다.

 수출도 양극화다. 대기업은 수출이 잘된다. 통계를 보면 사상 최대다. 지난달 24일 우리는 수출 2000억달러를 달성했다. 이런 추세라면 11월 말이나 12월 초면 사상 처음으로 수출 3000만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서민은 이런 통계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수출이 잘된다지만 대기업에 한정돼 있다. 품목도 몇 개에 그친다. 나머지는 죽쑤고 있다. 전체를 보면 잘나가지만 하나하나 뜯어 보면 부익부 빈익빈이다. 통계와 국민의 체감이 불일치를 이루는 대목이다.

 정부는 올 상반기에 취업자가 30만명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다. 당초 정부는 상반기에 35만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곳은 공공 부문이다. 나머지는 기업 몫이다.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취업난은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기업 몫까지 다 챙겨 생색을 내려고 할 게 아니다. 하반기 우리 경제는 4%대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래는 불투명한데 바다이야기, 한·미 FTA, 전시 작전통제권 회수, 노사 갈등, 동북공정 등이 연이어 불거져 나온다.

 정부는 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제조업이 동남아로 나가면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기업이 바라는 수도권 공장 증·신설과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활성화가 일자리 창출의 열쇠다. 지금 허리가 휘는 서민에게 대외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해 봐야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책의 피드백이 지금보다 더 빨라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즉시 처방전이 나와야 한다. 논에 해충이 발생했다면 즉시 농약을 뿌려야 하지 않겠는가. 구체적인 실행이 없는 서민경제회생은 빈말의 성찬이다. 정부는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기업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기업의 운영 주체는 정부가 아니다. 정부는 규제를 풀어 기업이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가을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