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정보화와 접목하면 디지털 노마디즘(유목주의)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할 것입니다.”
국립국어원 이상규 원장(54)은 다소 생뚱맞은 말을 먼저 꺼냈다. 이 원장은 “IT 발전으로 활자 정보가 디지털 정보로 급속히 대체되면서 디지털 문자가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다”면서 “한글이 정보화로 무장하면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전파하고 우리 상품을 손쉽게 파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특히 “한글은 배우기 쉬울 뿐더러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인정받고 있어 세계 문맹국에 우리 말 포자를 퍼뜨리고 해외 현지에 신속히 뿌리내리는 데 매우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음성학적으로 한글만큼 거의 모든 발음을 표현하는 문자가 사실상 없는 데다 한글의 문장 작성 속도가 빨라 정보화 시대에도 맞는 글이어서 한글이 세계의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글이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은 한글 정보화에 대한 투자 인식이 매우 낮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원장은 “정부는 지난 98년부터 10년간 150억원을 투입, 국어로 된 정보자료를 구축하는 ‘21세기 세종 계획’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반해 대기업은 사실상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도요타의 경우 우리의 국립국어원과 같은 정부 산하 기관에 매년 연구비를 출연,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자국어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21세기 세종 계획 프로젝트 초기에 기계 번역 등 중소 언어정보체계 업체들이 다수 활동했지만 현재는 경영난을 이유로 대다수가 사업을 포기, 국어 정보화 산업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대기업의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언어정보체계 기술은 70∼80%까지는 손쉽게 개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기술력을 1∼2% 높이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합니다. 중소 기업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기에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대기업이 거시적인 시각을 갖고 외국인이 한글을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음성정보 등 기초기술 투자에 나서야 합니다.”
이 원장은 “우리가 후대에 남기는 유산은 결국 언어 형태로 남게 된다”면서 “국어 정보화 비전과 전략을 새롭게 수립, 한글이 세계 언어의 대표 브랜드가 되는 것은 물론 IT 강국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수민기자@전자신문, sm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