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금융이 기기 노후화와 신권 유통에 대응하기 위해 진행중인 자동화기기 도입 사업이 관련 기기 업체들의 응찰 포기로 세 차례나 유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7월부터 우정사업본부가 현금자동입출기(ATM) 등 약 1500대의 자동화기기 물량을 발주했지만 책정된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며 관련 기기 업체가 모두 응찰하지 않은 보기 드문 상황이 빚어진 것.
이에 따라 현재 연말께 신기종을 도입하기 위해 기종 선종작업을 진행중인 주요 시중은행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은행권과 관련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우체국 기기 도입계획=지난달 말 제안마감에 이어 지난 4일로 예정됐던 입찰은 국내 자동화기기 시장에 참여해온 노틸러스효성·청호컴넷·LG엔시스·FKM 4개사가 모두 입찰제안을 하지 않아 무산됐다. 7월 첫 발주 이후 두 차례의 유찰을 거쳐 진행된 이번 세 번째 입찰 역시 유찰로 이어졌다.
교체될 기기는 지난 1999년, 2000년에 도입돼 철거되는 ATM(193대)·현금출금기(CD·953대)·통장겸용현금지급기(CDP·400대) 등을 대체하고 이미 발행이 시작된 5000원권을 비롯해 내년 유통을 앞둔 1만원권 등 신권을 수용하기 위한 것으로 ATM 393대, CDP 1060대, 동전교환기 10대 등 약 1500대 규모다. 이와 관련해 우정사업본부는 총 203억원을 관련 예산으로 배정했다.
◇잇단 유찰 배경=연속된 유찰은 업계의 시선으로 볼 때 턱없이 낮은 가격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발주물량으로 보면 중소형 시중은행의 규모와 비슷하지만 공개된 예가와 업체들의 제안가 사이에 큰 격차가 나타난 것이다.
자동화기기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억원 수준에서 물량을 수주하면 결국 밑지는 사업을 해야 해 응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신권 대응이 가능한 새 기기에 대해 업계의 예상단가는 대당 3000만원 안팎이다. 우체국금융의 발주물량과 업계의 계산 사이에는 적게는 50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 이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망과 과제=이번 유찰 사태로 자동화기기 가격을 두고 그동안 유지돼온 금융권과 자동화기기 업체의 현격한 의견 차이가 재확인됐다.
더욱이 올해 말부터 대대적인 자동화기기 교체를 계획중인 KB국민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농협 등 대부분 시중은행이 사업자 선정작업을 진행중인 상황에서 빚어졌다는 점에서 향후 은행들의 판단이 주목된다.
입찰을 추진해온 정보통신부 지식정보센터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향후 대응책 마련을 위해 검토작업중”이라고 밝혔다.
업체 한 관계자는 “기기 업체들은 그동안 이뤄졌던 저가 출혈 경쟁을 지양하고 원가에도 못 미쳤던 가격구조를 현실화해 품질과 서비스 경쟁이 이뤄지길 원한다”며 “정부 산하기관에서 먼저 이 같은 업계의 현실을 발주에 반영함으로써 금융기관과 업체들이 상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을 희망했다.
이정환기자@전자신문, vict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