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96년. 당시 대선을 앞두고 정부에서는 부처 개편 논란이 크게 일었다. 2년여 전 체신부에서 문패를 바꾼 정보통신부는 그로부터 때마다 일어난 부처 개편 논란에 중심에 있었고, 다른 부처로부터 ‘해체’ 주인공으로 늘 꼽혀 왔다. 10년이 지난 지금, 정통부는 다시 부처 개편 논의 중심으로 들어선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과거의 그것과 분명히 다르다.
당시 논란이 단순히 개별 부처가 포괄하고 있는 산업 영역의 크고 작음이나 일부 부처의 밥그릇 싸움에서 출발, 특정 부처의 해체 논란으로 이어졌다면 현재의 논의는 시장과 기술의 흐름 속에 우리 산업 전체가 처한 변화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규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대전제로 깔려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통·방 혹은 방·통 융합’이라는 대명제에 대한 정책이 현 정부, 나아가 차기 정부에서도 핵심정책 중 하나여야 하는 것은 우리 산업을 이끄는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IT가 ‘턴 어라운드’ 하기 위한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통·방 융합이 더는 특정 부처의 문제가 아닌 범 정부 차원의 공통 과제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통·방 융합을 수용할 수 있는 정책 변화는 사실 늦은 감이 있다.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와 ‘대한민국=이동통신 강국’이라는 등식을 세계 무대에 각인시킬 정도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통신 기술과 시장 확대 속도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지만, 현재 우리 통신시장은 왠지 사방이 막혀 있는 답답함에 몸부림하고 있다. 물론 세계 처음 휴대인터넷(와이브로)을 상용화하고, HSDPA나 지상파DMB처럼 차세대 통신·방송 서비스 시장이 다시 열리고 있는 긍정적 징후가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21세기 전 산업, 전 기술과 서비스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융합’이라는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정책 틀을 아직 갖추지 못했고, 이로 인해 새로운 융합 기술과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맛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다행히도 통·방 융합 관련, 최근 국무총리 자문기구로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출범했으며 청와대를 비롯해 국무조정실·정통부·방송위·문화관광부·산업자원부 등 방통융합추진위 준비반에 참여중인 정부 부처 및 기관은 통·방 융합 환경에 맞춰 정부 조직을 통합해야 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뜻을 같이했다.
특히 관련 주요 3개 기관인 정통부·문화부·방송위는 최근 큰 틀에서 융합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는 대전제에 대해서 합의한 후 세부 사안을 논의하는 등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3개 기관은 최근 제출한 ‘방송통신융합의제(안)’를 통해 △구조개편 필요성 및 이른 시일 내 법제 작업 추진 △수평적 규제 체계 도입 △규제 완화의 흐름 △통·방 융합 산업 활성화라는 4가지 큰 틀에서 추진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
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
◆통방융합 정책 어디까지 왔나
앞으로 방송과 통신분야의 기구 개편과 규제 체계 정비 방안을 제시할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위원장 안문석)와 이를 지원할 전문가 그룹인 전문위원회가 지난 7월 말 정식 출범했다. 이달 7일엔 정부 차원에서 추진위를 지원할 지원단도 발족해 새로운 통신·방송 시대를 이끌 ‘큰 틀’ 잡기에 나선 상황이다.
내년 말까지 1년6개월 간 한시적으로 활동하게 될 방통융합추진위에는 14명의 민간위원과 함께 당연직 위원으로 방송위원장·정보통신부 장관·산업자원부 장관·문화관광부 장관·공정거래위원장·국무조정실장이 참여한다. 또 지원단은 정부조직으로서 국조실 정책차장(차관급)을 단장으로 해 부처별 파견자 20여명으로 구성됐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자문기구인 방통융합추진위에 △내년 상반기 통합규제기구 출범 △IPTV의 내년 상용서비스 제공 기반 구축 등을 요구한 상태다.
정부 조직개편인 정통부와 방송위 간 통합 규제 기구 설립은 현재로선 내년 상반기에나 가능하리라는 낙관론과 정권 말기인 참여정부가 추진키엔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한계론이 팽팽하게 맞선 상황이다.
방통융합추진위의 김진홍 전문위원은 최근 본지가 주최한 ‘통방융합 연간기획 결산좌담회’에 참석해 “추진위와 전문위가 이번에 부처별 영역 조정만 하고 기구 개편을 하지 못한다면 비난을 받게 될것”이라며 “기구 통합은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최성진 전문위원은 같은 좌담회에서 “기구 개편은 법 개정이 필요한데 당장 내년 2월 국회가 열린다고도 보장하지 못한다”며 “조직개편은 결국 정부의 집권 초기가 아니면 어려운 일 아니냐”고 지적했다.
업계 및 정부부처에선 11∼12월께 추진위가 기구 통합을 포함한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가 향후 기구 개편의 추진력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