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유기 업체 A사는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외장 케이스를 금속 재질로 하려다 결국 포기했다. 금속 케이스는 일반 플라스틱에 비해 보기 좋지만 30% 이상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 소비자는 5만원 정도의 가격을 원하지만 금속 케이스를 사용하면 가격을 7만원 이상으로 올려 받을 수밖에 없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주변기기 업체 사이에서 ‘적정 소비자 가격’ 산정을 위한 노력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을 찾기 위해서다.
◇‘달콤한’ 가격대가 있다=스위트 스폿이란 원래 야구 배트에서 공이 가장 효과적으로 맞는 부분을 말하는 용어지만 경제학에선 소비를 촉진하는 가격대를 의미한다.
스위트 스폿은 이 가격대 제품 매출이 다른 제품에 비해 많게는 30% 이상 차이가 나는 등 제조·유통업체 사이에선 ‘금과옥조’로 통하고 있다. 물론 주변기기에도 ‘달콤한 가격’이 존재한다.
그래픽카드 업계는 10만원을 적정 소비자 가격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 10만원이 넘는 그래픽카드가 많지만 9만원대 제품 매출이 전체의 50% 이상이다. 외국 제품을 들여와 파는 특성상 이 가격대를 맞추기 힘들지만 엔비디아 7600GS 등 인기 제품은 전략적으로 이 가격대에 출시한다.
지상파DMB 수신기는 6만∼9만원대가 스위트 스폿이다. 가격 폭이 넓은 것은 각 회사가 제공하는 SW·안테나 등 번들 제품에 차이가 있기 때문. 3만원대 저가형 제품도 있지만 성능이 떨어져 판매는 전체의 10% 이하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전체 라인업의 80% 이상이 이 가격대에 속해 있다.
마우스·스피커·키보드 등 소모품의 적정 가격은 더 내려간다. 마우스는 1만원이 매출 마지노선이며 스피커 구매 소비자도 1만원 이상 제품을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키보드는 1만∼2만원대 제품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제품 출시 전 적정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가장 고민스럽다”며 “일부 업체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별도 패키지 없이 벌크(낱개 판매)로 제품을 유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달콤함’에 빠져들어라=‘달콤한 가격’을 맞추기 위한 업체의 노력도 가속화되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소싱하는 것은 기본이며 ‘스위트 스폿’을 위한 전담팀도 가동중이다.
앱솔루트코리아는 제품 출시에 앞서 직원을 모아 놓고 가격 결정 회의를 한다. 적정 이윤을 보는 가격대가 존재하지만 이 가격대가 최근 분위기와 너무 차이나면 회의를 열어 가격을 산정한다.
이 회사 박찬석 상무는 “1000원 가격 차이가 얼마 안돼 보이지만 때에 따라 30% 이상 판매량 차이가 발생한다”며 “가격을 맞추기 위해 공동 구매 등 다양한 마케팅 방법을 활용중”이라고 밝혔다.
에이엘테크는 기술팀을 앞세워 전 세계에서 부품을 구하고 있다. 이밖에 이강물산 등 ODM방식으로 제품을 구매해 국내에 공급하고 있는 업체는 스위트 스폿을 지키면서 적정 이윤을 볼 수 있는 제품 소싱을 생존을 위한 필수로 인식하고 있다.
홍성호 에이엘테크 팀장은 “일부 업체는 적정 가격을 이미 결정하고 제품 개발에 나설 정도로 스위트 스폿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너무 ‘달콤한’ 건 싫어=관련 업계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자칫 잘나가는 제품만 양산하고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제품 양산을 게을리할 수 있다는 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제품 라인업이 다양하지 못하면 대만·중국산의 저가 공세에 맥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평가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이다. 지상파DMB 수신기 업체는 지난해 10여곳이 제품을 출시했지만 9월 현재 월 1000개 이상을 꾸준히 판매하고 있는 업체는 3∼4곳에 불과하다. 5만원 가격을 맞추기 위해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을 잇달아 출시했기 때문이다.
남선우 코발트테크놀로지 이사는 “스위트 스폿 가격대가 중요하지만 기술 개발에 따른 원가 절감으로 이를 달성해야 의미가 있다”며 “저가형 수입 제품은 AS 등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정훈기자@전자신문, exist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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