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통신 분야에서 상당수의 표준 특허를 보유한 미국의 인터디지털이 한국 휴대폰 업계의 ‘공공의 적’으로 떠오르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중소 전문 제조사 역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현행 국내 특허제도는 오히려 외국 특허권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어 일정 부분 정책적 보완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출원일로부터 등록일까지의 기간이 외국에 비해 유난히 짧은 현행 특허행정이 오히려 외국 특허권들의 공세에 앞장서 길을 터주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휴대폰 강국의 위상을 지켜 나가려면 특허권자와의 공세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면서도 “자국의 제도가 자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되는 게 글로벌 표준일 수는 없다”며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
◇‘제2의 퀄컴’ 인터디지털=인터디지털은 유럽통화방식(GSM) 이동통신기술 분야 특허와 관련해 ‘제2의 퀄컴’으로 비유된다. 무선통신 기술에 대한 표준 특허 개발을 통해 로열티를 챙기기 때문이다. 인터디지털은 GSM 관련 핵심 특허를 4200건이나 보유하고 있다. 특허 분쟁에 대비해 전체 직원 320명 중 20∼30%가 국제변호사로 구성돼 있는 등 막강한 전투력도 갖췄다. 이 때문에 국내 휴대폰 기업은 물론이고 노키아·모토로라 등 글로벌 기업들도 가장 무서워 하는 ‘블랙홀’로 떠올랐다.
노키아는 지난해 말 미국 중재법원에서 인터디지털에 2억500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LG전자는 올 초 인터디지털과의 특허 분쟁에 승산이 없다고 보고, 2억8500만달러의 특허료를 인터디지털에 내는 것으로 계약하기로 했다.
◇제도적 보완 시급=휴대폰 특허 전문가들은 인터디지털의 공세를 비켜가기 위해선 ‘시간 지연작전’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을 주장한다. 외국처럼 특허 출원일로부터 등록일까지의 기간을 현재보다 늘린다면 국내 제조사, 특히 중소기업이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 초 새로 시행된 특허등록제도는 휴대폰 업계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게 중론이다. 새 제도는 특허출원일로부터 10개월 이내에 심사에 착수토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 골자. 기간이 짧아지면 기술회전이 빠른 이동통신 분야 기술 특성상 로열티 협상 등에서 특허권자가 유리해진다.
휴대폰 제조사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은 특허 출원에서 등록까지 4∼5년 걸린다”며 “5년 뒤 지급해도 될 로열티를 굳이 당해연도에 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인터디지털 등 해외 특허권자의 특허 등록 시 권리 범위를 정확히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권리 범위를 최대한 축소시킨다면 국내 기업들이 지적재산권 협상 테이블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망=인터디지털의 라이선스 요구가 거세지면서 국내 휴대폰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다만 내달로 예정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휴대폰 특허 이전은 업계에 단비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ETRI 측은 내달부터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공개입찰을 거쳐 중소 휴대폰 기업에 이전할 계획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3세대 이동통신 및 CDMA, 각종 네트워크 분야에서 ETRI가 보유한 특허기술이 민간기업에 이전된다면 대응 특허가 없는 상당수 중소기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김원석기자@전자신문, stone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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