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형태>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이 1년에 한두번씩 공식석에서 던지는 한마디는 산업계의 이슈가 되고 트렌드가 된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 놓고 보면, 디지털산업의 큰 흐름이 물흐르듯 보여진다. 이 때문인가. 그의 행보는 전세계 전자·IT업계의 최대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Mr. 플래시 황창규.’. 그러나 이 별칭은 더이상 황사장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플래시 뿐 아니라 차세대메모리 P램 등은 물론 세트업계까지 포함하는 세계 산업의 흐름을 항상 읽고 변화를 앞서가는 그에게는 이제 ‘Mr.트렌드’ ‘Mr.크리에이터’라는 별칭이 더 어울린다.
지난 9월 11일. 1년에 한 번씩 ‘메모리신성장론(황의 법칙)’을 증명하는 행사로 인식되기 시작한 삼성전자 신제품·신제품 발표회장. 이날 신라호텔에서 황사장은 5년전 9.11 테러와 달리 세계를 건설적으로 변화시키는, 반도체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기술(차지 트랩 플래시·CTF)을 발표했다.
35년간 활용된 전통 낸드플래시기술을 대체하는 획기적인 신개념이었다. 이 기술은 메모리의 테라비트시대 진입도 예약해 놓았다. 물론 황의 법칙도 실증해 냈다. 이 소식은 국내는 물론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타전돼 세계가 놀랬다.
그러나 몇일 후 접한 황사장은 이미 세계 반도체업계를 흥분시키고 본인도 상기됐던 신라호텔에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차분하고 덤덤했다.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가 쏟아내는 생각들은 ‘세계 산업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저력이요? 명확하지 않습니까. 이건희회장이 항상 강조하시는 인재와 R&D에 대한 투자, 그리고 투자의 과실인 우수한 삼성연구원들입니다.”
황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명감으로 맡은 연구 개발 부문에 몰두하는 연구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자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황사장은 항상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밤샘을 밥먹듯한 후배들의 가정에 작은 정성을 보낸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지만, 당신의 남편·너희들의 아빠는 소중한 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번 발표한 CTF 기술은 2001년 개발팀을 조직해 5년 동안에 체계적으로 연구해 얻은 성과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기술이 상용화수준으로 가긴 힘들다는 의견이 내부에서까지 나왔지만,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남보다 앞선 혁신적인 기술을 과감히 도입해 리스크테이킹(위험 감수)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결국 해낼 수 있었습니다.”
황사장은 매사가 합리적이면서도, 임직원을 꼼짝 못하게 하는 기술·트렌드 베이스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그가 세계 최고 조직인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를 끌어가는 힘이 바로 이 ‘카리스마’와 ‘가족을 챙기는 후배 사랑’ 그리고 ‘세계 디지털산업의 트렌드를 읽는 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메모리 1위기업에서 반도체 1위기업으로 우뚝서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빨리 그날을 맞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이자 바램입니다. 자신도 있습니다. 세계 유수 인재들의 꿈이 ‘삼성 반도체 입사’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
반도체는 세상을 바꾸고 삶의 질을 바꿔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반도체의 역할과 미래를 바꿔나가는 것이 황사장이다. 황사장은 항상 실현 가능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방향을 제시한다.
“반도체, 특히 메모리에 의해 인간의 생활을 바꾸는 다양한 디지털기기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전자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에너지·환경·바이오 등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산업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테라 반도체시대에는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귀찮은 일들은 반도체가 처리하고 사람은 창조적이고 인간다운 일과 가족에 집중할 수 있어, 삶의 질도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황사장이 뭔가를 발표하면 그 성과는 항상 세계 최초로 기록된다. 이때문에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삼성전자를 원하고, 바로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검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 항상 노출될 수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가 2위의 위치에 있을 때는 1위 업체만 따라 가면 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1위에 오르고 나니 유지하기 위해 남과 다른 세계 최초 기술과 1등 제품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1위자리는 ‘불확실성 감수’라는 부담감을 상쇄할 수 있는 자부심과 프리미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황의법칙, 디지털 노마드, 퓨전테크놀로지(FT)시대의 도래, 플래시러시, 플래시토피아....’
세계 산업과 경제에 새로운 목표와 트렌드를 던지는 황창규사장은 ‘필생즉사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자신이 던진 말에 책임을 지기로도 유명하다.
“이제 스페셜리스트만으로는 안 됩니다. ‘스페셜라이즈드 제너럴리스트(전문적이면서 만능선수)’가 되십시요.”
황사장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제언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가장 전문적이면서 가장 주변을 잘 아는 스페셜라이즈드 제너럴리스트’를 위해, 분야별 최고 인물·최고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시간까지 모두 투자한다.
“목표를 위한 목표는 무의미합니다. 목표는 달성을 통해 진화해 나가는 것이니까요.”
일본을 넘겠다는 포부로 삼성에 합류해 세계 메모리 1위를 이끌어 낸 황창규사장. 그의 도전은 ‘진정한 반도체 1위’를 향해 계속되고 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