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배우고 싶은 나라’라고 강조하는 핀란드. 1990년대 초반에 불어닥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강소국으로 거듭나게 된 핀란드의 배경에는 사이언스파크(과학단지)와 전문기술센터를 중심으로 한 ‘혁신 클러스터’가 있다. 오울루와 함께 핀란드의 대표적인 혁신 클러스터 모델로 꼽히고 있는 오타니에미 과학단지를 지난 12일(현지시각)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찾았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최대 위성도시인 에스포시에 위치한 오타니에미 과학단지는 핀란드 지역균형발전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오타니에미 모델’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국제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오타니에미 과학단지는 헬싱키 공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산·학·연 협력을 위한 기업 유치 노력이 시작되던 1983년 당시만 해도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 본부가 자리잡은 상아탑 전통이 지배하던 곳이다. 학구적인 냄새가 풍겨나는 연구단지가 세계적인 혁신클러스터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데는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듣고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평범한 상식이 통했다. 1980년대 지방 및 민간의 노력으로 시작된 지역발전 노력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중앙정부의 관심과 지원과 합쳐져 가공할만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것이다.
뻬르띠 후우스코넨 테크노폴리스 사장은 “오타니에미 모델이 성공한 것은 관료들이나 정부 차원의 선택이 아니라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힘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과학단지에 입주한 기업과 연구소, 대학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산·학·연 협력을 이뤘던 점도 오타니에미를 세계적인 하이테크 산업의 기술개발·혁신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됐다. 실제로 이곳에는 핀란드 최대의 공대인 헬싱키 공대와 세계적인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 본사를 비롯한 HP·MS 등 유수의 기업들, 국책연구소인 핀란드기술연구센터(VVT)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북유럽 최대의 창업지원기업으로 부상한 테크노폴리스가 오타니에미에 과학공원을 운영하면서 연구개발(R&D)과 혁신 결과물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실험실 차원의 연구물을 진정한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마르켓다 꼬꼬넨 에스포시 시장은 “클러스터의 성공조건으로는 우선 그 지역에 대학과 연구기관이 있어야하고 두번째로 생산성을 창출하는 업계, 즉 기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핀란드의 수도권은 인구 50만명 수준이지만 많은 전문성이 집중돼 있고 우수한 기업과 대학이 있고 시 정부 차원에서도 다양한 혁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타니에미의 성공에는 두가지 형태의 창업지원기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는 지역경제로의 투자유치와 고용창출을 통한 지역경제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성장을 목표로 중점 산업별로 산·학·연 주체들을 클러스터링하고 이들 간 네트워킹을 통해 정보교류와 협력추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비영리형 기업으로 오타니에미 마케팅이 있다. 또 하나는 기술혁신 결과를 상업화할 때 신설 기업(입주기업)이 본연의 업무에 역량을 집중하는데 필요한 각종 창업관련 행정·관리 분야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영리형 기업인 테크노폴리스가 있다.
이번 노 대통령 순방에서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테크노폴리스와 협력약정을 체결, 향후 혁신 클러스터 기관 간 교류·협력기반을 다지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국의 국가혁신체계나 지역혁신 체계 골격은 설명들은 대로 대체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만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내용은 많이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설명을 듣다 보니 기술혁신 이외에도 사회·정치·문화·국민의 태도 등에 대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우리나라도 핀란드처럼 그런 나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여러 해 전부터 핀란드의 연구개발, 혁신 체제, 특히 혁신 클러스터에 대해 벤치마킹을 했고 나름대로 모양새도 갖춰놨다. 이제 갖춰진 체계를 좀더 우리 실정에 맞게 손질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결실을 얻는 일만 남았다.
에스포(핀란드)=주문정기자@전자신문, mj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