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4주년(3)]글로벌 보부상-디지털산업

 유용태 쓰리에스디지털 사장은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디지털 가전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기간중 4일 내내 부스를 떠나지 않았다. 부스 앞을 지나가는 한 명의 바이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였다. 하루에만 열 명 이상의 바이어와 선약을 해놓고 시간 단위로 미팅을 하는 바쁜 와중이었다. 라스베이거스 호텔 한 곳만 잡아도 LCD TV를 500대 정도 납품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점심도 전시장 내에서 차가운 샌드위치를 집어들고 먹는둥 마는둥 했다.

 쓰리에스디지털은 셋톱박스로 시작해 LCD TV로 사업을 확장한 이 분야 중소벤처기업. 지난 해까지만 해도 LCD TV 시장이 좋았지만 대기업의 가격 압박과 중국 업체들의 OEM 시장 진입으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오직 수출만이 돌파구입니다. 디지털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가 큰 힘이 돼 승산은 충분합니다.” 유 사장의 말이다.

 디지털혁명으로 세계 첨단 제조업의 지형이 달라진 이래 ‘메이드 인 코리아’를 가슴에 단 ‘글로벌보부상’들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이들은 디지털TV, IPTV, 디지털카메라와 같은 디지털 가전과 퍼스널 가전에서부터 시작해 깨알만한 부품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한국의 영토를 넓히는 ‘디지털산업 공정’에 치열하게 뛰어들었다.

 디지털기술 외에 이들의 무기는 정열적인 추진력과 우직한 신뢰다. PDP TV업체인 김도균 우성넥스티어 사장은 바이어와의 일대일 만남을 최고의 무기로 삼았다. 대우통신 미국법인장, 수출사업부장으로 PC를 팔러 전세계를 누비며 쌓은 노하우와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소 PDP TV업계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했다.

 신욱순 홈캐스트 사장도 해외 시장 개척으로 잔뼈가 굵었다. 삼성물산 출신으로 셋톱박스와 인연을 맺은 이래 홈캐스트의 CEO를 맡아 해외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홈캐스트는 유럽시장에 MPEG4 HD급 위성방송 셋톱박스를 수출하고 태국에 HD, PVR 하이엔드 IP셋톱박스를 수출하는 등 해외시장에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신천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도 최대의 덕목.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매출의 절반 이상을 디렉TV 등 미국시장에서 올린데 이어 유럽의 신천지를 밟았다. 세계 최초로 유럽시장에 MPEG4 기반 고선명(HD) 위성방송 일체형 LCD TV를 출시해 독일 주요 유통점에서 본격 유통하기 시작한 것. 셋톱박스로 회사를 키운 변 사장 입장에선 유럽과 LCD TV라는 두 개의 신천지에 제대로 깃발을 꽂은 셈이다. 게다가 첫 사례다. 국내 기술력으로 유럽의 미디어 시장을 이끄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임화섭 가온미디어 사장도 아이슬란드 시장의 독주체제를 구축한데 이어 노르웨이 UPC에 HD셋톱박스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공급하는 53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어 북유럽 방송사업자 시장이라는 신천지를 뚫었다. 임 사장은 핀란드(100억원 규모), 사우디아라비아(99억원 규모) 등에서도 성과를 올리며 셋톱박스 제2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강승효 디브이에스코리아 사장은 미국 지사장 출신이다. 그는 처음부터 시장 자체를 국내가 아니라 세계 전체에 맞췄다. 세계 시장은 국내보다 더욱 치열한 경쟁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만큼 품질 높은 제품으로 자동차 시장을 공략해야한다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완성차 업체를 두드리지 않았다.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전장품 업체를 찾아갔고, 결국 미국 비스티온에 DVD드라이브를 공급할 수 있었다.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사장의 해외시장 개척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국내에서처럼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든다는 것이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 어떤 말보다는 정직한 제품을 만든다는 철학이야말로 세계시장에서도 통용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박남규 코원시스템 사장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성이다. 세계 시장의 트렌드에 맞춰 사업 다각화를 추진 중이다. 글로벌한 컨버전스 시장에서 하나의 사업에 올인 하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PMP,DMB, 내비게이터 등 디지털디바이스 등을 통해 다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구자신 쿠쿠홈시스 사장의 1차 공략 대상을 밥솥 종주국인 일본이었다. 쉬운 시장부터 들어가 확대한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되는 결단이었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시장을 뚫어야 길이 열린다는 생각이었다.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밥을 지을 수 있는 기능을 개발했고, 이를 홍보하면서 결국 일본 시장 개척은 성공을 거뒀다. 13억의 인구가 밥을 먹는 중국도 주요 수출 대상이었다. 중국 현지 공장을 세우고, 대규모의 투자 조인식도 개최하며 쿠쿠홈시스를 알려나갔다.

◆부품

전주선 단양솔텍 사장은 세계 곳곳의 제조라인을 찾아다니며 친환경 공정으로 바꿔 놓고 있다. 단양솔텍은 무연 솔더 전문업체로, 유럽연합이 올해부터 납이 함유된 제품의 역내 유입을 금지함에 따라 단양솔텍의 무연제품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국·인도·동남아시아 등 세계의 주요 생산기지는 모두 전 사장의 활동무대다. 그는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낸다.

서민호 텔레칩스 사장도 국내에 있는 시간보다 해외에 나가있는 시간이 더 많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에서 가장 보기 힘든 CEO 중 하나로 꼽힌다. 서 사장이 1년간 쌓는 비행기 마일리지만 30만 마일이 넘는다. 출장지도 종잡을 수 없다. 미국·중국·대만·유럽 등 전자업계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MS와 DRM 부문 협력을 하게 된 것도 유럽 시장에 DAB와 MP3 플레이어를 결합할 수 있는 칩을 유럽에 수출하게 된 것도 서사장 세계 무대에서의 활약 덕이다.

김한식 소프트픽셀 사장은 미래형 디스플레이 시장을 개척하며,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개념조차 희미했던 2000년 당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전문업체를 창업했으며, 남보다 앞서 시장을 개척한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 확보에도 세계 곳곳에서 발빨리 움직였다. 이미 두께가 0.7㎜에 불과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포실과 아디다스·나이키·타이멕스 등 패션 시계 제조업체에 공급하고 있으며, 미국 트라이-디 시스템과는 아시아지역 독점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박진수 비에스이 회장의 열정은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에서도 인정할 정도다. 7년 전 담당자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노키아였다. 현지에서 담당자가 약속을 펑크낸 것도 부지기수였지만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과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열정을 보였으며, 영업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화재와 같은 만약의 상황에도 항상 대비된 자세를 보였고, 그것이 결국 계약으로 이어졌다.

이경준 에이스안테나 사장은 에이스안테나의 CEO를 맡으면서 첫 번째 목표를 해외 시장 진출에 뒀다. 이 사장은 취임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해외메이저 휴대폰 업체와 계약을 추진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산전

최근 중동의 오일달러와 브릭스 시장의 급성장을 틈타 지문인식 업체들의 해외시장 개척이 눈에 띈다. 신요식 유니온커뮤니티 사장과 이재원 슈프리마 사장은 해외시장 개척의 첨병이다. 이들은 직접 물건을 들고 해외 바이어를 찾아가길 꺼리지 않는다. 유니온은 문턱이 높기로 유명한 일본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데 이어 중동과 브릭스 시장 개척을 위해 유럽과 남미를 노크하기 시작했다. 진두지휘는 역시 신 사장이 맡았다.

이재원 사장도 세계 최대 출입통제 그룹인 아사 소속의 에쁘에쁘사와 이스라엘의 로슬레어사 등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을 직접 뚫어냈다.

주요 수출업종이 된 DVR도 아이디스를 필두로 많은 회사들이 메이드인 코리아 깃발을 내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김영달 아이디스 사장은 영상보안기기인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분야에서 세계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특정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회사가 되자”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선 김 사장의 해외시장 창출노력이 직접적인 효과를 냈다.

권오언 윈포넷 사장은 러시아, 남미 등 DVR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 활동파다. 대표가 직접 나서기 때문에 생겨나는 거래선과의 신뢰를 가장 중요시 한다. 최소 1년 정도는 서로 다른 파트너로 눈을 돌리지 않도록 신뢰를 쌓으며 안정적인 거래선을 여럿 만들어 놓았다. 최병봉 파인트론 사장도 해외 보안기기 전시회마다 찾아다니며 해외 업체와의 파트너십 관계를 하나씩 쌓아올리는데 주력한다.

계측기 분야는 다국적기업들의 입지가 워낙 강해 국내 기업이 발붙이기 어려운 동네다. 정종태 이노와이어리스 사장은 이 틈바구니 속에서 통신단말기용 계측기에 특화한 개발에 성공한 뒤 해외시장을 계속 노크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스프린트넥스텔과 EVDO용 무인무선망 최적화 장비에 대한 400∼500만 달러 규모의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