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컴퓨팅 기업인 미국 IBM이 올해 전 세계 최고경영자(CEO) 765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65%가 “2년 내 회사 및 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답했다. 또 보스턴컨설팅 그룹의 최근 조사에서도 기업 경영자 72%는 가장 시급한 도전 과제 세 가지 중 한 가지로 혁신을 꼽았다. 이처럼 혁신은 전 세계 어느 기업을 망라하고 모든 기업의 화두다. 제품·프로세스·비즈니스 모델 등 경영의 모든 분야가 혁신대상이고 CEO들의 최대 고민이다. 혁신은 곧 성장을 위한 전제기 때문이다.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기업 혁신의 살아있는 ‘보고서’들이다. 극한의 글로벌 생존 경쟁에서 터득하고 얻은 각종 경영 노하우는 우리 기업들도 본받을 만한 점이 많다.
매년 50억달러 연구개발비를 퍼붓고 5명의 노벨수상자를 배출시킨 IBM에는 R&D에 관한 성공과 실패의 100년 기록이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독점적 시장 지위를 유지하는 강력한 마케팅 비법이 숨겨져 있다.
또 연 매출 90조원을 바라보는 HP는 굴지의 기업이 된 후에도 여전히 벤처 정신을 잃지 않는 ‘건강성’이 있다.
5대 경영 이념 중 하나로 친환경을 명문화한 후지쯔가 녹말을 원료로 한 노트북PC 부품을 개발하고, 동남아시아 녹화 사업을 지원하는 대목에서는 최근 또 하나의 기업 가치로 떠오른 ‘상생’의 방법론을 배울 수 있다.
전 세계 PC 공급 1위 업체인 델의 공급망 관리 혁신, 가구 회사로 출발한 EMC의 한발 앞서는 인수합병(M&A) 전략도 두고두고 참고할 만한 기업 스토리다.
또 다국적 기업은 벤치마킹과 경쟁의 대상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꿈꾸는 수많은 회사의 전략적·잠재적 파트너기도 하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스티브 발머 CEO,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스콧 맥닐리 회장 등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 기업과 협력 사례를 만들었고, 인텔·IBM·HP·BEA 등도 앞다투어 R&D센터를 한국에 개설했다.
이들 글로벌기업과 얼마나 경쟁력 있는 파트너십을 많이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은 한 국가의 경쟁력하고도 직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R&D센터를 유치하는 등 글로벌 기업과 교류의 폭을 넓히는 일은 중요하다. 다국적 기업 지사와 본사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인력들을 배출하는 것도 더욱 필요해졌다.
다국적 기업을 얼마나 잘 벤치마크 하느냐,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이냐,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어떤 영감을 끄집어 낼 것인가를 분석하고 배우는 것, 그것은 기업 성장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요, 국가의 경쟁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한국유니시스 강세호 사장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은 밥먹듯이 변칙을 일삼지 않는 원칙을 철저히 따르는 기업 문화, 저가 공세가 아닌 철저한 수익성 위주 경영, 적절한 리쿠르팅과 아웃소싱을 통한 글로벌 기업 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이 세가지는 아직도 우리나라 기업이 부족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기고-글로벌 기업과 상생 없이 비즈니스는 없다
: 최준근 글로벌IT 기업 CEO 포럼 의장·한국HP 사장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진출한 지 수 십년. 글로벌 기업은 한국 경제 한 축으로서, 한국을 전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이끌었고 지속적인 성장 모멘텀을 제공하고 있다. 또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 전도사로 한국 경제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원천이요,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체로 하는 선진국형 기업 문화의 발신지였다.
글로벌 기업 가운데서 다국적 IT기업들은 강력한 인프라, 신기술에 대한 빠른 수용력을 가진 한국을 주목한다. 글로벌 IT기업들은 국내 기업들과 시장을 함께 키우고 새로운 기술을 같이 만드는 ‘동반자’로 국내 IT산업을 견인하는 주역 자리를 자처하고 있다. 고용 창출 부문은 물론 국산 제품을 구매해 본사로 공급하는 등 수출 전선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외형적인 지원뿐만이 아니다. 내실을 다지는 데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척박했던 토양에 첨단 IT를 소개하고 경영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다. 최근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에 연구개발 센터를 운영한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IT기업들이 지속적으로 국내 기업들과 상생할 수 있는 안정적인 비즈니스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정책적 지원 부문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서 기업 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를 지양하는 것, 거시적인 측면에서 유연한 노동 시장을 마련하는 것,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한국 투자를 계획하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가장 큰 신뢰를 제공해 준다.
동반자로서 글로벌 기업들은 정부 및 국내 기업들과 비즈니스 환경 개선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전개하고 국내 투자 활성화를 지원함으로써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한국 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교류, 민관 협력 채널을 통한 정책 제언과 건의는 한국 IT산업의 위상을 높여 한국 기업이 세계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상생경영은 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 모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국제 경제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세계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받아들여 IT산업이 우리 경제의 주력 수출산업으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산업의 구조를 더욱 선진화하자. 여기에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을 축적해 나간다면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IT산업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joon-keun_choi@h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