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후 청계산 입구 한 음식점. 어스럼해질 무렵 몇 시간 산행으로 머리와 윗옷이 땀에 흠뻑 젖은 한무리의 사람들이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허운나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총장이 최휘영 NHN 대표, 전하진 인케코퍼레이션 대표, 김병기 지오인터랙티브 대표, 배희숙 이나루티앤티 대표 등과 함께 하고 있었다. 이날 산행은 영원한 등반대장 엄홍길씨가 이끌었고, 박범신 작가도 동행했다.
박 작가는 즉석에서 ‘운우(雲雨)회’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이날 태풍 ‘산산’의 북상으로 하늘이 잔뜩 구름으로 뒤덮인 것과 딱 맞아떨어진 모임 이름이다. 어쩌면 구름낀 한국 IT산업에 다시 햇살을 돌게 만들 주역들의 자리에 꼭 맞는 이름 같기도 했다.
허 총장은 막걸리가 한 순배 돈 다음, 모임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들어간 ‘운(雲)’과 친구 ‘우(友)’라고 재해석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쟁쟁한 젊은 IT업계 CEO들과 뭉친 허 총장은 49년생이라는 모습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과 젊음으로 어느새 한 동아리가 돼 있었다. 허 총장은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좋은 사람들과 같이 산을 오르면서, 우리 IT산업의 밝은 미래를 재확인했다”며 “앞으로 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젊은 IT코리아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싶다”고 말했다.
모임의 주축이 된 CEO들이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단이어서 그런지 모임은 시종 젊음과 생기가 넘쳤다. 뒤늦게 협회 부회장인 김태희 케이블렉스 대표가 함께 하면서 산행 뒤풀이는 그야말로 흥겨운 축제의 장이 돼 갔다.
모임 기획 얘기를 듣고 망설임 없이 곧바로 참여를 결정했다는 최휘영 NHN 대표. 국내 최대 포털의 경영을 맡아 2년 만에 시가총액을 두배 이상 끌어올린 그도 업계에서는 정상이었지만, 이 모임에선 묵묵히 후배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면서도 항상 모임의 에너지를 충천하는 데 앞장섰다.
최 대표는 “대표가 된 뒤 처음 땀을 흘리며 산행을 한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뜻맞는 CEO들과 같이 땀 흘리며 의기투합한 것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국내 인터넷산업 1세대 경영자로 한글과컴퓨터, 네띠앙 등 숱한 사연과 영욕을 헤쳐온 전하진 대표도 만 50세를 눈앞에 둔 현실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시종 열정이 넘쳤다. 오히려 후배 CEO보다 여유롭고 자신감이 가득했다.
전 사장은 “10년 가까이 우물을 파고 있지만 아직은 더 파야할 것 같다”며 “아직 할일이 남아있으니 주저앉을 수 없고,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후배 CEO와 자주 만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모임에서 배희숙 사장은 시종일관 ‘누님’으로서 좌중을 압도했다. 특유의 자신감과 유쾌함으로 벤처기업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여성기업가로서, 벤처기업협회를 이끄는 부회장으로서 그동안 걸어온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겠지만 그 굴곡과 거친 길이 그를 ‘여장부’로 만들었을 게다.
배 사장은 “여성기업가들이 벤처산업 곳곳에서 성공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에 맞는 정당한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여성기업가가 신명나게 일하고, 산업과 사업 모두에서 제 역할을 할수 있는 환경이 지금보다 한 열배는 더 좋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희 케이블렉스 사장도 배 사장과 단짝을 이뤄 여성CEO가 두 명밖에 참석하지 않은 자리지만 좌중을 여성CEO 파워로 들썩이게 만들었다.
김 사장은 “오늘 이 자리 분위기처럼 여성의 자신감과 파워라면 산업 전체의 분위기도 바꿀 수 있다”며 “우리 IT산업 재도약의 칼자루를 여성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산행 모임을 주도하고, 이날 초대 운우회 회장으로 선출된 김병기 지오인터랙티브 사장도 꼬박 10년째 벤처기업을 해 온 뚝심의 소유자다. 늘 서글서글한 눈빛과 온화한 얼굴 표정인데 사람들은 그에게 감춰진 열정과 끈기에 더 놀란다.
김 사장은 “‘처음처럼’이란 말처럼 짧으면서도 엄청난 뜻을 담고 있는 말이 없는 듯하다”며 “출발 때의 그 자세와 노력으로 벤처산업이 앞으로도 IT산업을 떠받치는 동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IT기업인들과 늘 가까이하며 그들과 산행하기를 좋아하는 엄홍길 대장도 특유의 ‘파이팅’ 정신을 기업인들에 불어넣으려고 애를 썼다. 산행 자체가 벤처기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도전의 연속이었던 그였기에 벤처기업가를 대하는 애정이 어느 산악인보다 뜨겁다. 모임이 있을 때, 산행할 때 마다 엄 대장이 늘 전파하는 구호에도 벤처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흡사 신성의식처럼 ‘우리는’을 외치면, 주변사람은 ‘하나다’를 외쳤고, 이어 ‘도전은’을 선창하면 주변사람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를 연호했다.
‘영원한 도전’만큼 벤처정신을 상징하는 말이 또 있을까. 그만큼 산악대장 엄홍길은 ‘영원한 도전’을 숭배에 가까우리만치 소중하게 여겼다.
IT산업 턴어라운드를 위해 ‘새롭게 도전하는 것’보다 큰 에너지는 없을 것이다.
청계산=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etnews.co.kr
◆IT맨들을 지켜보니
‘24시간을 48시간으로, 다시 그것을 72시간으로 늘려 쓰는 사람들.’
희망은 어느 시대에나 일하는 사람의 손에서 다듬어진다고 했다.
본지 창간 24주년 맞아 IT산업의 최전선을 지키는 사람들의 24시간을 쫓아가 보았더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신명’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남들이 보지 않아도 일한다는 점’과 ‘다른 사람이 쉬고 있을 때 일한다는 점’이었다. 대표(CEO)에서부터 평사원까지 직책의 다양했지만 자기일에 대한 소신과 열정은 격차 없이 똑같았다.
한밤중 일터에서 만난 이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이 일 하려면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전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지만 그 일의 결과는 만인이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일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털어놓았다.
때로는 피곤과, 가끔은 외로움과 또는 육체적 위험과 싸우면서도 자기 일에 대한 소신과 자부심은 누구보다도 컸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아침, 회사에 도착하는 그 상쾌함이 없었다면 어떻게 늘 하루같이 그 시간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겠는가. ‘내 일’이라는 절대 확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아내 생일에 지방 기지국까지 모두 둘러보고 오려고 기꺼이 차에 시동을 걸 수 있었을까.
인간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누구는 80%밖에 미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누구는 150%를 넘어선 결과를 얻기도 한다.
문제는 과정의 충실성이다. 오늘도 IT산업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주인공은 하나하나가 우리 산업을 위해 보석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의 묵직한 노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IT산업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