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혁명시대/전자를 아는 자만이 새시대에 살아남는다.’ 1982년 9월 22일 창간호 1면에 실린 조병화 시인의 축시 ‘미지의 빛’서 일부 발췌.
엄청난 선언이었다. 컴퓨터를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80년대 초반. 전자 기술을 모르면 도태된다는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었을까. 전자신문은 창간호에서 이 땅에 전자혁명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소리 높이 외쳤다. 그리고 24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이제 미국, 일본과 맞먹는 IT강국이자 정보화에서 가장 앞선 나라로 탈바꿈했다. 한국 전자산업과 함께 웃고 울었던 전자신문. 그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미래의 꿈을 새롭게 다져본다.
◇창간=1982년 어느 화창한 봄날. 금성, 삼성, 대한전선 등 당시 내로라는 전자업체 대표들이 여의도에서 모였다. 이 자리에서 한국도 일본의 덴파신붕(電波新聞)과 같은 전문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모두 찬성했다.
업계 대표들은 당시 전자공학계에서 명망이 높았던 김완희 박사(80)에게 전자신문의 발행을 부탁하고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때는 서슬퍼런 신군부가 언론사들을 통폐합한 직후. 새로운 신문 라이선스를 받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6월 30일, 김완희 박사가 문공부에 가서 받아낸 등록허가증에는 당초 신청한 ‘전자신문(電子新聞)’이란 제호 대신 ‘전자시보(電子時報)’가 찍혀 있었다. 여러 신문사를 폐간시킨 차에 새로 신문을 허락하기 껄끄러웠던 문공부 관리들이 눈치껏 생각해낸 제호였다. 전자신문사의 태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전자시보(82∼91년)=IT 전문기자로 명성을 날리던 성의경 씨가 8월초에 초대 편집국장으로 취임하면서 창간 작업이 본격화됐다.
당시 전자신문 편집국에는 언론 통폐합으로 쫗겨났던 해직 기자가 16명이나 들어왔다. 전자신문 창간의 주축 멤버였던 해직 기자 출신들은 87년 민주화 이후 한겨레, 매경, 말 등 다른 언론 매체로 들어가 요직을 맡으며 활약했다.
그해 9월 22일 전자시보 창간호가 마침내 나왔다. 한국 전자업계의 자발적인 후원과 축하 속에 옥동자가 태어난 것이었다. 덕분에 전자시보는 창간부터 대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산업 현안에 대해 공정하고 독립된 편집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여타 언론과 달리 기자들이 취재, 편집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이 없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때맞춰 일어난 PC 열풍은 회사 경영에 큰 도움을 줬다. 85년 8월부터 주 2회씩 신문을 발행했다. 87년 3월에는 국내 IT전시회의 효시격인 ‘제1회 한국 소프트웨어산업 전시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후 전자시보의 전시사업은 SEK로 확장되면서 지속되고 있다. 88올림픽 이후 국내 전자산업의 성장에 탄력이 붙으면서 전자시보에 대한 뉴스 수요도 함께 늘어났다. 증면을 거듭한 결과 89년 9월 22일 격일간 발행 체제로 돌아섰다. 이와 함께 ‘전자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일간지 전환=전자신문은 고속 윤전기를 도입하고 91년 4월 1일부터 주 6회 발행하는 일간 체제로 돌아섰다. 주간지로 출발한 산업 전문지가 불과 9년만에 일간지로 성장한 것은 세계 언론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건이다.
전자신문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전자산업을 이끄는 언론매체로서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94년 10월에는 SW산업 발전을 위해 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 제도를 창설했다. 95년 2월 사옥을 여의도에서 현재 영등포 사옥으로 옮겼고 국내 최초의 CD롬 멀티미디어 잡지인 ‘클릭’을 출간했다.
96년 4월부터 한글 제호와 가로쓰기가 전면 도입됐다. 웹 서비스인 인터넷 전자신문(ETnews.co.kr)도 함께 설립돼 인터넷시대에 걸맞는 실시간 서비스에 들어갔다. 이 해 전자신문은 한국신문협회의 정식 멤버로 가입했다.
◇벤처 열풍과 고속 성장기=97년의 IMF 외환위기는 전자신문 경영에도 큰 타격을 줬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본격화된 인터넷 붐과 벤처 열풍은 국내 유일의 IT일간지에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가져왔다. 여타 신문사들이 경영난에 시달리는 동안 전자신문은 탄탄한 흑자기조를 달성하게 됐다.
98년 말 인터넷 전자신문(ETnews)의 접속 횟수는 하루 500만을 돌파, 국내 3대 인터넷뉴스 사이트로 성장했다. 정보기술이 경제와 정치,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전자신문의 구독층이 크게 다양해지고 뉴스의 질도 향상됐다. 이제 전자신문은 스스로 한국의 주류 언론으로 자리매김할 단계까지 올라간 것이다.
◇제 2창간=2000년 초반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세계 IT산업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전자신문은 IT산업의 활로를 열기 위해 초고속인터넷 보급과 유비쿼터스, 차세대 이동통신, IT교육사업 등 끊임없이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며 정부 정책을 이끌었다.
IT언론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경쟁 매체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IT산업을 선도하는 지식전문지 전자신문의 맏형 노릇에는 변함이 없다. 2004년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 게임주간지 ‘더 게임스’를 창간했다.
올들어 전자신문은 전문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해 영상사업과 IT연구소 설립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제 2창간을 목표로 총 80억원을 투자해 내년 1월 1일부터 서울 양평동에 새로운 고속 윤전시설을 가동할 예정이다.
새 고속 윤전기가 증설되면 전자신문은 48면 체제의 24면 컬러 합쇄로 시간당 15만부의 인쇄 능력을 갖춰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독자들을 찾아가게 된다. 대한민국 IT산업과 함께 성장해온 전자신문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이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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