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4년이면 전문지로서 정말 대단한 역사입니다. 밖에서 평가하는 이상으로 전자신문이 계속 발전하길 바랍니다.”
성의경(65) 신산업경영원장은 초창기 전자신문의 창간 과정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70년대 국내 유일의 IT 전문기자로 명성을 날렸던 성 원장은 전자시보(전자신문 창간 당시의 제호) 초대 편집국장을 3년간 맡으며 겪었던 어려움과 보람을 털어 놓았다. “신군부가 언론 통폐합을 단행한 직후여서 정부에서 신문 라이선스를 주기 싫어 했어요. 그래서 전자신문이란 이름 대신 전자시보란 명패를 달고 출발했습니다.”
그는 창간호를 내면서 외신발 산업 뉴스로 지면의 절반을 채우고 영문판을 두면씩 발행하는 등 당시로선 매우 혁신적인 지면 구성을 단행했다. 또 여타 일간지에서 나온 해직 기자들을 다수 영입해 최고의 편집국 진용을 갖췄다. 또 일본의 전파신문, 미국의 컴퓨터월드와 제휴해 텔레타이프로 해외 IT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송받는 첨단 시스템도 갖췄다.
주변에서 전자산업만 다루는 전문매체는 아직 시기상조라며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신문이 나오자 산업계 반응은 매우 좋았고 때맞춰 일어난 PC 열풍은 회사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 성원장은 그동안 전자신문을 거쳐간 창간 멤버 중에서 일간지 편집국장이 4명이나 나왔고 전자신문 인맥이 정보통신, 과학언론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데 대해 큰 자부심을 비췄다.
“우리나라 최고의 신문을 만들자고 다들 의욕이 대단했죠. 오늘날 한국의 IT산업이 일본, 미국에 못지않은 수준에 오른 것은 전자신문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자신문이 비록 주 1회 발행으로 출발했지만 창간부터 한국 제일의 일간지를 목표로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자시보는 창간호부터 주간지, 월간지에 붙이는 종이 지(誌)자 대신에 일간지의 지(紙)자를 써서 週刊紙로 나갔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IT 전문지로서 비전과 포부가 명확했던거죠” 성원장은 돌이켜보면 전자신문에서 3년이 인생에서 참으로 값지고 보람찬 시간이었다며 후배들에게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라는 덕담을 건냈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