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차세대 먹거리 기술을 국제표준(GS)으로 만든다.
정부가 최근 2010년까지 시행할 ‘제2차 국가표준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지능형 홈네트워크, 디지털 콘텐츠 및 솔루션, 차세대 이동통신 등 10대 신성장 산업을 ‘메이드 인 코리아’의 대표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국제 표준화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 신기술 결정체인 신성장 동력산업 분야는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개발된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채택하는 것이 전통산업 분야보다 더 중요하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특히 MPEG 표준화 성공신화에 버금가는 새로운 국제표준 선도 분야를 창출하는 게 급선무다.
이와 관련, 기술표준원 표준기술기획팀 오유천 연구관은 “국내 기업들이 선진국보다 먼저 개발한 신기술이 국제 표준에 제때 반영되지 못하면 자칫 힘들게 개발한 우리 신기술이 허무하게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는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표준전쟁 시대를 맞이함에 따라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 적극 대처하고자 국제표준기구(ISO)·국제전기표준회의(IEC) 등 국제 표준단체에 우리 신기술을 반영하기 위한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왜 발벗고 나서나=국제 표준 선점은 신기술·신제품 나아가 한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실사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VCR 재생방식 표준전쟁이다. 마쓰시타 VHS에 밀려 10년 만에 사라져버린 소니의 베타(β-MAX) 방식, 미국 디지털 HDTV에 밀린 일본 아날로그 HDTV, 소니 8㎜ 캠코더 때문에 사라진 삼성 4㎜ 캠코더 등이다.
또 중국과 미국은 무선랜 보안기술을 둘러싼 표준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04년 당시 중국은 자국 무선랜 보안표준(WAPI)을 개발, 중국 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무선랜 제품은 반드시 자국 보안표준을 따라야 한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중국 정부는 광활한 영토에 인터넷을 보급하려면 무선랜 보급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내수 시장을 미국 측에 내줄 경우 자국 산업의 설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중국의 이러한 행동에 미국 측은 즉각 반발했다. 자칫 맥 놓고 있다가는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자국 표준을 국제표준으로 제안하는 등 양국은 표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국제표준을 선점하면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인식이 세계 각국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고 판단, 우리 신성장 기술을 국제 표준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틀을 갖출 계획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국제표준의 사용자에서 제안자로 역할을 전환하는 국제표준화 전략을 수립하고 국가적 차원의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 신성장 산업분야는 선 표준화, 후 상품화가 이뤄지는 IT분야가 많은만큼 기술 개발단계부터 국제 표준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특히 △기술개발 △지적재산권 △표준화 등을 삼위일체 형식으로 추진해야 시장 선점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제2차 국가표준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국가 표준 체계의 선진화 △표준기술 하부구조 강화 △국제 표준화 대응역량 강화 △민간표준 활성화 등이 발표의 골자다. 정부는 이를 위해 현재 국가 R&D예산의 1.9%인 표준예산(1520억원)을 2010년까지 5000억원 수준으로 확대한다. 이를 통해 신성장 동력 기술을 국제표준에 적극 반영, 우리나라가 세계 산업 4강으로 도약하는 데 디딤돌을 만들 계획이다.
◇먹거리 기술 국제 표준 활동=정부는 2008년까지 국제표준(ISO·IEC)에 우리 기술 15%를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성장 산업 분야의 국제표준 관련 기술이 약 2000건에 이를 것으로 보고, 이중 우리 신기술 300건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를 중심으로 학계와 산업계는 국제 표준 무대에 우리 신기술을 끊임없이 데뷔시키고 있다. 지난 2003년 말 우리는 총 137건의 우리 기술을 국제표준에 반영하거나 제안했다. 또 지난 2005년 말 우리 기술 47건을 추가 반영했다. 올해는 지난 6월 말 현재 17종이 추가로 반영되는 등 지난 3년간 총 201건이 반영이 완료됐거나 심의중에 있다. 이러한 우리 기술의 국제 표준 반영 추세라면 2008년께 신기술 300건을 국제표준단체에 반영한다는 당면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예측된다.
디지털 콘텐츠와 솔루션 분야에서 우리 기술의 국제 표준 반영이 가장 활발하다. 이는 MPEG 기술 분야가 이미 디지털 콘텐츠·디지털 TV 등 신성장 산업과 깊이 관련 있는데다 우리 기업이 90년대부터 원천기술 표준화 경쟁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또 정보보안기술, 자동인식, 생체인식 등 솔루션과 관련된 핵심기술에서 우리가 크게 앞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비해 미래형자동차, 차세대전지, 바이오 신약 등 분야의 국제 표준화 반영 실적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실정이다. 물론 국제적으로 단기간 내 해당 산업의 국제표준 선점이 어려운 분야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제표준화 기반 구축 활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올해 전자태그(RFID) 기술 분야에서 시스템 관리 프로토콜, 센서 태그, 보안 등 3건과 반도체 센서 관련 4건 등을 포함해 35건의 국제표준을 제안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한 12건의 국제표준화 과제를 발굴해 산업계와 학계의 국제표준 획득 활동을 지원한 바 있으며 3건을 추가로 선정해 지원할 계획이다.
허경 기술표준원 부장은 “우리나라는 전통산업 분야에서 원천기술 부족, 선진국 표준을 주로 수용해왔다”며 “급속한 기술 혁신이 일어나는 무선인터넷·RFID 등의 신성장 산업 분야를 선점, 표준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말했다.
안수민기자@전자신문, sm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