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으로 흩어져 있는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마치 하나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처럼 지원해 주는 ‘e사이언스’ 환경이 연구개발(R&D)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다. ‘e사이언스’ 환경이 구축되면 연구자들은 지리적으로 분산돼 있는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과학기술 분야나 산업 분야의 응용기술 개발에 적극 활용할 수 있다. 가령 여러 대학이나 연구소에 흩어져 있는 고성능 컴퓨터나 그리드 시스템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유방암 진단이나 심장병 연구, 항공기·우주선 설계 제작 및 시뮬레이션 등 대형 연구 프로젝트에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유럽연합(EU)과 미국을 중심으로 차세대 R&D 환경인 ‘e사이언스’ 도입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럽 및 미국 e사이언스의 진화와 향후 우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3회에 걸쳐 소개한다.
EU와 미국은 ‘e사이언스’를 R&D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EU는 영국을 필두로 독일·이탈리아·프랑스·폴란드·헝가리 등이 앞다퉈 e사이언스 환경 구축에 나서고 있다.
EU는 향후 2년간 23개의 비즈니스형 그리드와 서비스 기술 개발 과제에 7800만유로(약 975억원)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그리드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e사이언스 체계로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고성능 컴퓨팅 환경은 하드웨어·미들웨어·응용서비스의 3개 계층으로 나뉘는데 그리드 컴퓨팅 기술이 주로 컴퓨팅 자원과 응용기술을 연동하는 미들웨어 분야를 담당한다면 e사이언스는 최상위 계층인 응용서비스를 담당한다. 따라서 유럽이 그리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은 e사이언스 체계로의 진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EU는 7800만유로를 그리드에 투입해 △베인그리드(BEinGRID) △엑스트림오에스(XtreemOS) △브레인(BREIN)의 3개 그리드 대형 프로젝트(23개 세부과제)를 추진한다. 엔터테인먼트·금융·제조업·과학·유통·직물 등 산업 분야의 18개 과제를 추진하는 베인그라드 프로젝트에 1570만유로(196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또 그리드 서비스와 사이버 커뮤니티를 리눅스 기반으로 구축하는 엑스트림오에스 프로젝트에 1430만유로(178억원), 공항 물류관리동의 오류 문제를 해결하는 브레인 프로젝트에 660만유로(82억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EU에선 그리드를 활용한 R&D가 산업계에서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나 항공기·금융·제약 분야 등을 중심으로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아우디는 그리드 시험 모델을 신차 ‘Q7’에 적용해 제작 기간을 절반인 30개월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 설계와 제작·시험 등에 참여하는 각국 유관기관이 인터넷에서 ‘가상의 회사’를 설립,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신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유럽집행위원회(EC)의 신기술 및 인프라 구축 책임자인 울프 달스턴 국장은 이미 EU가 e사이언스의 상용화 모델 구현에 바짝 다가섰다고 말했다. 그는 “초고속인터넷망을 기반으로 하는 e사이언스의 산업화가 급진전되고 있다”며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R&D 패러다임을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뤼셀(벨기에)=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