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6위의 휴대폰 업체 벤큐모바일이 막대한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독일 소재 회사를 파산보호 신청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로써 지난해 지멘스의 단말기 사업을 인수한 후 벤큐모바일로 출범, 화려한 비상을 꿈꾸던 벤큐의 휴대폰 명가를 향한 꿈은 1년도 안 돼 물거품이 됐다.
벤큐 실패의 원인은 세계 6위의 ‘지멘스’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경쟁력이 없는 상태에서 삼성전자·모토로라 등 세계적 품질의 브랜드와 고가 휴대폰 단말기 시장 경쟁을 벌인 데서 찾을 수 있다.
벤큐모바일은 지난 28일(현지시각) 뮌헨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기업인 대만의 벤큐코퍼레이션이 더는 자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뮌헨 휴대폰 공장 직원 3000명의 일자리도 연말까지만 유지되고 회사는 청산절차를 밟게 됐다.
◇적자 누적이 결단 재촉=셰퍼 리 벤큐 사장은 이번 결정에 대해 “지난 1년간 벤큐모바일 경영 회복을 위해 총 10억7000만달러를 지원했지만 휴대폰 부문에서 7억6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모기업의 한계를 넘어선 재정지원에도 회생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독일법인의 파산 결정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또 내년까지 계획된 6억4000만달러의 추가 지원금도 회수할 가능성이 극히 불투명하다. 결국 벤큐 경영진은 적자 투성이 독일법인에서 산소호흡기를 떼는 극약 처방을 내리게 됐다.
에릭 유 벤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조치로 벤큐의 적자 폭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벤큐는 지난해 4분기 휴대폰 사업 인수 여파로 창업 이래 처음 적자로 돌아섰고 이후 3분기 연속해서 4억달러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벤큐모바일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지속적인 제품 구매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금줄이 끊긴 벤큐모바일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멘스 측은 벤큐의 독일 휴대폰 법인 파산조치에 심한 당혹감을 드러냈다.
◇벤큐, 유럽 휴대폰 투자 왜 실패했나=벤큐는 지난해 10월 지멘스의 휴대폰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일약 세계 휴대폰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자사보다 역사와 인지도에서 훨씬 앞서는 ‘지멘스’ 브랜드로 휴대폰을 팔면 제2의 도약을 이룰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벤큐는 세계 휴대폰시장 점유율을 연말까지 10%까지 올리겠다며 중국·독일·스페인·러시아 등에서 고가폰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판매부진과 적자누적 앞에 벤큐는 1년 만에 무릎을 꿇으며 야심을 접고 말았다.
애당초 지멘스가 물려준 휴대폰사업부의 기술력, 브랜드 역량으로는 선두주자인 노키아, 모토로라·삼성과의 격차를 줄이기에 무리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지난 독일 월드컵 때 선보인 벤큐지멘스의 3G폰은 품질 불량으로 소비자의 혹평을 받았고 세계시장 점유율은 아직 4%대를 맴돌고 있다. 벤큐의 유럽 휴대폰사업이 파국을 맞으면서 벤큐모바일에 부품을 공급해온 인피니온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반면에 지멘스는 골치 아픈 휴대폰 사업부문을 벤큐에 넘긴 이후 경영실적이 크게 호전됐다. 지멘스는 지난 6월 말 끝난 분기 실적에서 작년 대비 두배 이상 늘어난 10억달러 이상의 순익을 기록한 바 있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