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액션 레이싱이란 복잡한 장르 ‘알투비트’는 달리는 것과 음악적 요소를 결합해 독특한 게임성을 자랑한다. 정해진 트랙을 따라 달리며 장애물을 피하는데 리듬과 박자에 맞춰 키보드를 눌러야 거침없이 달릴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음악을 듣지 않는다면? 어찌어찌 플레이를 할 수 있을진 모르나 대단히 힘든 레이스가 된다. 그래서 이번 미션은 음악없는 ‘무음 플레이’로 결정했다. 그것도 ‘알투비트’를 만든 씨드나인 개발자에게 직접 미션을 의뢰했다. 과연 그는 자신이 손수 만든 게임의 고난이도 미션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서혁 디자인팀장은 ‘알투비트’의 초기 기획부터 현재까지 팀을 이끌고 있는 가장 핵심요원이다(여기서 디자인이란 흔히 말하는 그래픽이 아니라 게임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주로 해외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개발사 시드나인 측에서는 서 팀장이 아니면 이번 미션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며 그를 강력히 추천했다. 처음엔 완강히 거부했던 그가 회사를 위해 평소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그만큼 개발사의 자존심이 걸린 미션이다.“사실은 제가 가장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보다 더 잘하는 직원이 있는데 어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요. 사실은요, 요즘 현지화 작업땜시 제가요, 플레이를 좀 안 했어요. 아, 이거 참 연습을 좀 더 할 수 없을까요….”
그는 횡설수설했다. 긴장한 기색이 온 몸에서 풍겨 나왔다. 마음이 약해져, 서 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션이 실패해봐야 망신밖에 더 당하겠느냐”고 위로까지 해줬다.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그는 작은 노트북으로 열심히 연습을 계속했다.
“그래도 데스크탑 키보드로 하는게 더 낫지 않겠어요? 하필이면 노트북이죠. 그것도 엄청 작은 걸루….”
그 이유는 분명했다. 다른 개발자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한 회의실로 자리를 정했고 그러기 위해선 무선랜이 가능한 노트북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노트북은 서 팀장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의 큰 손에 비해 노트북의 키보드가 너무나 작았다.
“괜찮으시겠어요?”
“그럴리가요. 제 손을 보세요. 진짜 열악한 환경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키보드가 다 가려지잖아요.”
부탁하지도 않은 열악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고선 왜 나한테 승질인지!아무튼 일단 플레이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중간 난이도로 설정하고 서 팀장이 가장 자신있는 곡으로 선택했다. 플레이가 시작되자 그의 거대한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정도로 조용한 회의실에서 무음 플레이가 진행됐다. 모두들 긴장한 눈빛으로 노트북의 화면을 지켜 봤다. 초반에는 별 다른 무리없이 술술 풀려나갔고 중반까지 상쾌한 레이스가 계속됐다.
모두들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침내 레이스가 종료되고 그는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결과가 매우 좋았다. 중간에 몇 군데 걸렸지만 거의 무난하게 레이스를 펼친 것이다.
“아니, 대단하시네요. 역시 개발자는 다릅니다. 진짜 놀라워요.”
“글쎄요. 의외로 잘 되네요. 후후.”
“그럼 이번엔 음악을 켜고 한번 해보죠. 올 콤보가 기대됩니다.”
“그럼, 그럴까요?”
자신만만해진 서 팀장은 노트북의 사운드를 올렸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설정으로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상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그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초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온통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었다.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 모양 말을 잊었다. 음악을 안 듣는 것이 더 좋은 성적이라니. 리듬에 맞춰 키보드를 눌러야 하는 게임이 아니었던가.
‘알투비트’의 무서운 음모(?)가 마침내 드러난 것은 아닐까.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플레이가 결국 종료됐다. 모두들 할 말을 잊은 가운데 서 팀장만 입을 열었다.“어험, 다른 곡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다른 유저와 레이스를 하시죠. 원래 무음으로 1등을 하셔야 미션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말을 듣자마자 그는 멀티플레이를 위해 방을 하나 골라 입장했다. 8명의 인원이 모두 모이자 성격급한 방장은 곧바로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다소 어려운 곡이 선택됐지만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서 팀장은 노트북을 조작하더니 사운드를 높이 올렸다. 쿵작 삐약 빠라빵 랄라라∼. 리듬에 맞춰 그는 열심히 키보드를 눌렀다. 역시 초반 레이스는 퍼펙트하게 달렸다. 중반에 이르자 실수하기 시작했고 다른 유저에게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스크린샷을 잡아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런 상황은 보여 줄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
서 팀장은 열심히 플레이를 했으나 끝까지 들어 가지도 못했다. 참담한 결과가 나타났다. 만약 같이 플레이했던 유저들이 꼴찌한 유저가 메인 기획자라는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역시 무음으로 하셔야 잘 될 것 같습니다.”
“거 이상하네요. 음악을 들으면 더 잘해야 하는데…. 무음으로 해 볼께요.”
서 팀장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손가락을 마사지 하며 게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물론 노트북의 사운드는 진작에 꺼 놓은 상태였다. 다시 게임이 시작됐고 조용한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서 팀장의 손가락만 소리없이 바빴다. 초반 레이스에서 줄곧 1등을 차지하더니 중반까지 선두 그룹을 유지했다. 모두들 눈이 커졌다. 그러다 몇 번의 실수가 있었으나 부스터를 사용해 힘차게 따라가는 장관을 연출했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서 팀장은 1등은 하지 못했으나 중위권에 올랐다.
“혹시 이 게임이 음악을 들으면 오히려 방해가 되나요?”
“아뇨, 그럴리가 없죠. 진짜 이상하네요. 왜 더 잘하죠? 음악을 안 들으면 훨씬 더 어려운게 맞는데. 소리없이 연습을 너무 많이 했나봐요.”
본인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후에도 몇 번 더 똑같은 방식으로 도전해봤으나 역시 무음 플레이 성적이 더 뛰어났다. 앞으로 서 팀장은 자신의 게임을 제대로 테스트하기 위해선 사운드를 끄고 해야 할 판이었다.
이번 미션은 사실 매우 어려운 목표였기에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충분한 가능성은 보여줬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무음경기로 인해 비록 서 팀장의 재활훈련(?)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으나 여기에 굽히지 않고 황당미션은 계속 될 것이다. 긴장하라, 개발자들이여!
<김성진기자 har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