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대표적인 메이저업체인 CJ인터넷(대표 정영종)이 지난 21일 공시를 통해 이례적으로 매출 등 올해 실적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 그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CJ가 FPS게임 ‘서든어택’의 빅히트로 올들어 네오위즈와 함께 사실상 게임시장을 주도해온 대표적인 기업인 데다 향후 견고한 실적 증가가 무난할 것으로 관측돼 왔기 때문이다.
CJ는 특히 작년 상반기부터 온라인 게임 퍼블리싱 시장에서 과감한 배팅을 동반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넥슨·네오위즈·엔씨·NHN 등과 함께 이 시장을 좌지우지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CJ는 또 목표 실적 하향 조정과 함께 투자를 당초 목표치에 절반 이하로 낮추기로 결정했다고 발표, 향후 게임시장 전반에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CJ인터넷은 21일 공시를 통해 올해 예상 매출액을 당초 1270억원에서 1050억원으로 하향조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목표치를 17% 가량 하향 조정한 셈이다. 영업이익 역시 394억원에서 296억원, 순이익은 284억원에서 194억원으로 각각 24.9%, 31.7% 대폭 낮춰 잡았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게임판권 및 인프라분야에 투자키로 했던 계획(300억원)을 50%로 낮춘 150억원으로 조정하고, 기업 투자 역시 400억원에서 170억원으로 60% 가까이 줄이기로 했다.
CJ의 이같은 발표는 사실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워낙 연초부터 CJ 내부는 물론 증권가 등 외부에서 올 실적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증권가에서 목표주가를 4만원까지 제시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CJ측은 이에대해, 올해 예상 매출액을 전년 대비 50% 이상 높게 잡은 것을 현실에 맞게 축소 조정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CJ의 실적 재조정은 현 게임 시장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 회사 실적을 좌우할 ‘서든어택’ 외에 특별히 내세울만한 히트작이 없다는 것이 아킬레스건으로 해석된다.
CJ는 사실 중급 타이틀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회사의 중장기 성장을 견인할 캐시카우가 취약하다. 비록 ‘서든어택’이 당초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지만, ‘대항해시대’를 비롯해 작년 이후 투자한 게임의 실적이 신통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 목표 달성에 연연하다보면, 자칫 효자중의 효자인 ‘서든어택’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이다.이밖에 설립 이후 줄곧 확실한 효자노릇을 해왔던 웹보드 분야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데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인한 후폭풍을 맞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CJ는 실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기 직전 NHN·네오위즈 등과 함께 아이템베이·아이템매니아 등 온라인게임 아이템 중개업체 사이트에서 고스톱·포커 등 웹보드게임 머니의 현금 거래를 차단했다.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이같은 조치로 향후 웹보드게임 부문의 실적 부진이 예고돼 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스톱, 포커의 현금 충천, 이른바 ‘현질’을 하는 이용자의 상당수가 현거래를 한다는 점에서 아이템베이 등에서 거래를 차단한 것은 게임포털들의 실적에 상당히 부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CJ의 이번 결정은 그룹 차원의 경영 방침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CJ그룹 차원에서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를 재점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CJ그룹 경영진 내에사 게임 분야 전담사인 CJ인터넷의 공격적 행보에 제동을 걸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CJ가 이번 실적 하향 조정과 함께 당초 계획의 절반 이하로 투자 축소를 강조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CJ그룹이 그동안 디지털 콘텐츠 전반에 공격적 투자를 단행했던 것에서 최근 한발 물러서고 있는 것 같다”면서 “게임방송 진출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것이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CJ가 비록 디지털콘텐츠 부문에서 SK, KT, 삼성 등 경쟁그룹들에 비해 앞서 있긴 하지만,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공세를 강화하는 시점에서 관련 사업 전반에 대한 정밀 재 점검을 통해 내실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국내외를 가리지않고 과감한 배팅으로 주목을 받았던 CJ가 공세를 거둬들임에 따라 게임 시장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메이저 퍼블리셔 간의 경쟁적인 투자로 후끈 달아올랐던 퍼블리싱 시장과 중소 개발사를 대상으로 한 M&A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CJ의 이번 결정이 불투명한 게임시장에 맞춘 탄력적 대응이라면, 경쟁 퍼블리셔들 역시 수세적 입장으로 돌아서 다시한번 국내 게임 프로젝트 투자 시장이 냉각기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벤처캐피털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프로젝트 투자 시장이 활기를 띠었던 것이 CJ를 비롯한 퍼블리셔들이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하며, “이번 CJ의 투자 축소가 다른 경쟁기업의 투자 패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거의 ‘쇼크’로 비춰지는 CJ의 갑작스런 실적 하향 조정과 투자 축소는 게임비즈니스에 대한 불신과 불투명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주식 시장의 재활황 국면속에서 게임주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보인다.
실제 21일 CJ 공시 이후 게임주들이 일제히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게임주가 증시에서 대접을 못받는 것이 연초 실적 전망치에 대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업체가 많은 등 불신의 골이 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올 게임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서든어택’이란 게임을 서비스하는 CJ마저 충격적으로 실적을 대폭 하향조정한다면, 다른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들의 시선이 고을리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