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8월 체코 프라하 흐르잔스키궁에서 스피들라 총리 주최로 열린 국빈 만찬장. 일본이 자랑하는 로봇 ‘아시모’가 고이즈미 당시 총리를 수행해 참석했다. 아시모는 이날 스피들라 총리에게 “나는 ‘로봇’이란 단어가 탄생한 체코에 친선 사절로 왔다”고 인사했다. 일본이 로봇 강국이지만 이날만큼은 로봇의 고향 체코를 다시 한번 확인해준 셈이다.
마찬가지로 지상파DMB의 고향은 한국이 아닌 유럽이다. 정보통신부·방송위원회 등 국내 정부기관 및 부처는 지상파DMB를 ‘한국형’이라고 거듭 자랑했지만 고향은 여전히 유럽일 뿐이다.
지상파DMB는 본래 유럽의 디지털라디오 규격인 유레카147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형’이지만 우리가 보유한 원천기술은 거의 없다. 유일한 원천기술은 오디오 규격인 ‘BSAC’인데 이마저도 해외에선 경쟁 규격인 AAC+를 함께 채택하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지상파DMB 단말기 제조사들은 1대 제조할 때마다 유럽 기업에 ‘2유로’ 정도의 로열티를 내야 한다. 또 유레카-147 기반이다 보니 국내 지상파DMB방송국 구축에는 인코더를 제외하곤 대부분 유럽 방송장비업체들의 장비가 쓰였다. 해리츠와 팩텀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 규격을 기반으로 ‘한국형’ 휴대이동방송 규격을 만들어 상용화한 것이다. 정책 수립 당시 기반이 된 각종 ‘지상파DMB의 청사진’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 2004년 5월 ‘지상파DMB가 2010년까지 연평균 70%씩 증가해 연간 1056억원의 광고 수입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다른 전망치에선 상용화 첫해 매출 203억원, 2010년 7481억원 등으로 언급됐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용화 첫해에 해당하는 올해 20억원, 내년 60억원도 힘든 형국이다.
아울러 커버리지도 지적된다. 지상파DMB특별위원회는 “당초 정통부는 지상파DMB 커버리지가 FM라디오와 유사하다고 발표했었다”면서 “이는 차량용을 기준으로 한 수신 커버리지로서 현실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상파DMB의 주력 수신형태는 휴대폰인데 이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셈이다. 현재도 차량용 단말기는 도로기준 99%의 수신율을 보이지만 정작 주력 단말기인 지상파DMB폰은 60∼70%에 그친다.
‘한국형’이란 환상에 사로잡혀 잘못된 전망치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셈이다. 지상파DMB 사업자들은 결국 수익모델 부재의 덫에 걸려, 지난달 수도권 지하철 구간에서의 서비스를 포기키로 했다. 지하철 내 수신을 위한 연간 경비인 30억원을 부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KBS·MBC·SBS·YTN DMB·유원미디어·한국DMB 6개 사업자는 이미 긴축 경영 체제에 들어선 지 오래다. KBS만 해도 내년 지상파DMB 부문 예산이 당초 계획보다 상당부분 삭감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위원회는 비수도권 단일권역이었던 지역 지상파DMB 정책을 변경해 6개 권역으로 쪼개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중이다. 수도권 사업자들의 위기는 이미 닥쳤고 여기엔 빗나간 환상이 자리잡고 있다.
한 관계자는 “수도권 사업자 출범 때의 몇 가지 거짓말에다 지역에선 ‘지역 공익성 구현’이라는 명제가 하나 더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4년 당시 지상파DMB 가입자·매출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