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피에스케이 박경수사장(2)](https://img.etnews.com/photonews/0610/200610100063_10030728_l.jpg)
(2)도전을 통해 꿈을 현실로!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커리어를 보장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험이었다. 하지만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내 앞에 ‘반도체산업’이라는 미래의 보고가 펼쳐졌고, 나는 손을 뻗어 잡았다. 그렇게 `피에스케이`는 설립되었다.
이제는 연간 30∼50%의 고속성장을 이루면서 피에스케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업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대학들로부터 초청강연 제의가 종종 들어왔다. 그때마다 ‘대학’이라는 말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도전하는 젊음’의 향기에 매료돼 시간이 허락하는 한은 흔쾌히 수락하고 있다.
강연 후 자유질문시간마다 빼놓지 않고 듣는 질문이 하나 있다면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한결 같은 내 대답은 ‘꿈’과 ‘도전’이다.
사업은 어려서부터 간직해 온 내 꿈이었다.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셨던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기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면서 공장 관사에 살게 돼 자연스레 아버지가 사업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또 친척들 중에 사업을 하시는 분이 많아 자연스럽게 사업가의 꿈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도 상대를 지원해 경영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MBA까지 마치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동부그룹 뉴욕지사에서 근무하게 됐다. 당시 나의 미래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리 한 쪽에서는 ‘나의 꿈’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코실과 몬산토(美)가 합작하여 웨이퍼 원재료 가공 공장을 설립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때 처음으로 ‘반도체’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프로젝트를 위한 정보수집 및 시장조사 등을 하며 나는 점점 반도체산업의 무한한 미래성장 가능성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또 내 곁에는 훌륭한 조언자가 있었다. 당시 금성사 연구책임자로 있던 매제다. 80년대 불모지와도 같던 우리나라와 세계반도체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도와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1984년 나는 뉴욕 생활을 접고 사업을 위해 귀국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5년 금영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그 사업 중의 하나가 PSC라는 일본 반도체 장비회사의 대리점 운영이었다. 하지만 대리점이라는 것이 항상 중간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얽매임도 많았고, 내 의사결정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소비자들도 우리의 말을 신뢰하기보다는 항상 본사의 말을 듣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이 장비를 직접 제조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사업을 결심했을 때부터 제조업을 생각했다. 또 어려서부터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해 막연하게나마 기계제조업을 염두에 두었고, 금영은 제조업을 시작하기 전 사업의 기초를 다져나가기 위한 초석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PSC의 대리점을 운영했으니 기술적 접근이 비교적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내 결심은 빠르게 실현되었다.
한발 더 나아가 반도체 장비사업이 지니는 의의는 매우 컸다. 당시 우리나라에 반도체를 패키징하는 일부 후공정 장비를 조립하는 회사는 있었지만 고도의 기술력과 신뢰성을 요구하는 전공정 장비를 개발하여 납품하는 회사는 전무한 실정이었다. 따라서 반도체산업에 투자되는 비용은 해마다 늘어났지만 장비 국산화가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장비 대부분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가 국외로 유출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체 장비, 그 중에서도 전공정 핵심장비 중 하나인 애셔 장비를 국산화한다는 것이 지니는 의미는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1990년 ‘반도체 전공정 핵심장비 국산화’라는 전사적, 국가적인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피에스케이㈜를 설립, 반도체 애셔장비 제조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kspark@psk-in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