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란의 황제’ 임요환이 다시 눈물을 흘렸다. 2004년 늦가을, ‘에버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절친한 후배 최연성에게 2대 3으로 우승컵을 내준 뒤 의미를 알기 어려운 눈물을 보인 지 꼭 2년 만이다.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지만, 임요환에겐 매우 뜻깊은 ‘유종의 미’를 거둔 눈물이었다.
CJ미디어가 서울시 등과 공동으로 마련한 대회로 지난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열린 ‘슈퍼 파이트’서 그는 오랜 라이벌인 폭풍 저그 홍진호와 일전을 벌였다. 임요환과 홍진호의 대결은 워낙 명경기가 많아 ‘임진록’이란 애칭으로 불리운다. 모처럼 벌어진 ‘임진록’에 구름처럼 몰려든 팬들은 열광했다.
‘임요환을 위한 무대’로 평가받는 제 1회 슈퍼파이트에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가며 다시한번 각본없는 드라마같은 명경기를 연출해 냈다. 그는 홍진호의 폭풍러시를 잠재우며 그의 전매특허인 드롭십과 특유의 전략적인 플레이를 마음껏 선보였다. 입대전 마지막 공식 대회인 터라 후회없는 한판이었다. 팬들 역시 둘의 승패를 떠나 황제의 고별전 자체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무려 60여만명에 달하는 팬클럽 회원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임요환은 9일 공군 전산 특기병으로 입소했다. 비록 공군측의 배려로 4주간의 신병 훈련을 거친 후 군인 신분으로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이제 더 이상 ‘군미필자’로서 황제의 활약을 볼 수 있는 길을 없다.
임요환의 지난 8년 프로게이머 생활은 화려함 그 자체다. 99년 ‘제1회 SBS 멀티게임 챔피언쉽’에서 우승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수 많은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우승 제조기’로 이름을 날렸다.
스타크래프트 선수들 사이에선 ‘꿈의 무대’라는 온게임넷 스타리그(OSL)서도 2연속 우승, 6회 결승진출 등 숱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프로리그에서도 특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SK텔레콤 T1팀을 이끌며 4연속 우승이란 신화를 창조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가 유달리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세월이 흘러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사실. 그는 27세로 한국e스포츠협회 소속 프로게이머중 최고령(?) 선수다. 빠르고 정교한 손놀림과 두뇌회전을 필요로하는 e스포츠계에서 스물일곱이란 나이는 ‘환갑’에 비유된다. 하지만, 그는 이같은 속설을 무색케하듯, 올초 ‘쏘원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 올라 또한번 세상을 놀라게했다. 한술 더 떠 그는 “30대에도 프로게이머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자주 강조한다.
자칫 단조로운 플레이에 그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의 경기 내용을 송두리째 뒤바꾼 전략적이면서도 화려한 플레이도 그를 ‘황제’라 불리우며 e스포츠계 최고 스타로 군림케한 근본 이유. 임요환은 ‘드롭십’으로 대변되는 특유의 전략적 플레이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정교한 컨트롤과 화려한 유닛 운용, 일순간에 승패를 결정짓는 칼날같은 타이밍러시 등으로 다른 선수들과 ‘결과는 같되 과정이 다른’ 명경기를 수 없이 펼쳤다. 그는 또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승부근성을 바탕으로한 역전의 명수로도 유명하다. 좌우명이 ‘지고나서 후회하지말자’일 정도로 승부근성면에서 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황제의 군입대로 e스포츠계는 다시 위기에 빠졌다. 실력면에서 임요환급으로 분류되는 선수는 적지 않지만, e스포츠계에 미치는 영향력면에서 그에 근접하는 선수가 없기 때문. 마치 ‘라이언킹’ 이승엽이 빠진 프로야구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팬들에겐 아쉬움을 e스포츠계에는 ‘포스트 임요환’에 대한 숙제를 남긴 채 이병 임요환은 9일부터 27개월이란 결코 짧지않은 군생활을 시작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