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대한 관심만 놓고 보면 우리가 노벨상감이에요.”
맑은 가을 하늘이 보기 좋은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찾은 여학생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이날은 서울 성북교육청이 운영하는 ‘과학탐구교실’의 여학생 24명이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의 본산으로 불리는 KIST를 찾은 날이다. 과학탐구교실은 성북교육청이 중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6개월 단기 교육 과정으로 현장 체험 위주의 과학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모두 중학교 1학년 동갑내기인 이들은 지난 3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첫 등교할 때처럼 들뜬 표정으로 KIST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KIST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받은 후 처음으로 찾은 곳은 지난 40년간 KIST의 연구성과를 전시해놓은 역사관. 이제는 너무나 흔한 ‘물건’이 된 전자계산기와 칼라TV에서부터 어디에 쓰는 것인지 감이 안 오는 위험작업로봇 ‘롭해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가 한 눈에 보인다. 달나라 착륙에 성공했던 닐 암스트롱이 지난 71년 방한시 남기고 간 방명록도 관심의 대상이다.
유혜림양(서울 인수중 1년)은 “평소 과학을 좋아해 과학에 대한 관심만큼은 노벨상감이라고 자부한다”며 “다양한 것을 많이 접할 수 있어 흥미로왔다”고 말했다.
역사관을 둘러본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연구실 탐방이 시작됐다. 첫 연구실은 마이크로시스템연구센터. 지난 6월 알약 크기의 캡슐형 마이크로내시경을 선보여 주목받은 곳이다.
이병철 마이크로시스템연구센터 연구원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실제로 병원에서 쓰이는지, 외국제품에 비해 어떤 점이 좋은지 등 질문이 쏟아진다. 씹어서 삼켜도 되냐는 엉뚱한 질문이 나오자 연구실이 웃음바다로 변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CAD/CAM연구센터.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컴퓨터가 자기 자리를 탈출해 다양한 사물 속으로 들어가는 세상, 키보드와 마우스없이도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궁금증이 커진다.
이중호 연구원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나 나올법한 동작으로 터치스크린 컴퓨터를 조작하자 손짓 하나하나에 인기가수 콘서트에서나 들을 수 있는 환호성이 터졌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않았는지 몇몇 학생들이 터치스크린에 슬그머니 손을 올려놓자 다른 학생들도 앞다퉈 손끝으로 컴퓨터와 교감을 나눴다.
터치스크린을 만졌던 호기심어린 손길은 이날의 마지막 탐방 연구실인 지능로봇연구센터로 옮겨서도 계속됐다. TV에서나 보던 ‘마루’와 ‘아라’가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 학생들은 로봇과 악수하며 카메라로 로봇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특히 학생들은 ‘옷(외장)’을 벗겨놓은 로봇의 속 내에 흥미를 보였다. 이들은 로봇 내부에 장착된 각종 기계장치를 보며 로봇의 원리와 구조를 배웠다. 비록 이날 열린 로봇학회 행사때문에 로봇 작동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로봇과의 만남은 학생들에게 소중한 체험이었다.
세 시간의 짧은 탐방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는 길, 박지현양(서울 인수중 1년)은 “오늘 하루 어렵게 느껴지던 과학기술 세상과 더 친해진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인터뷰-박준영 서울 삼성중 교사
“무엇보다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날 학생들을 인솔해 KIST를 방문한 성북교육청 과학탐구교실의 박준영 교사(서울 삼선중·46)는 흥미 유발이 과학교육 및 학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사는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해, 특정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배우는 과학은 그 동기가 오래가지 못하며 학습 효율성도 낮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흥미를 갖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에 있어서도 교과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 지속적인 실험 체험을 통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차원에서 박 교사가 참여하고 있는 성북교육청 과학탐구교실은 매주 월요일 학생들과 다양한 실험학습시간을 갖고 있다. 과학탐구교실 학생들은 과학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교육 효과와 반응도 긍정적이다.
박 교사는 “초중등학교 시절 과학에 흥미를 느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흥미를 잃고 과학을 입시 도구로 보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보다 많은 실험실 교육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체험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인터뷰-강문지 서울 삼각산중 1년
“캡슐형 내시경이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면 좋겠어요.”
서울 삼각산중 1학년에 재학 중인 강문지양은 얼마 전 수면내시경 환자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직접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과학기술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강문지양은 “기존 내시경은 환자들에게 너무 힘들어 보였다”며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캡슐형 내시경이 KIST에서 본 것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성북교육청 과학탐구교실에 참여하고 있는 강문지양은 지난해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도 성북교육청이 운영하는 과학우수실험반에서 활동하며 과학에 대한 흥미를 키워왔다. KIST를 방문한 것도 이번이 두번째다.
강문지양은 “과학교실 활동을 통해 다양한 과학실험을 해보고 평소 가보기 힘들었던 연구실도 직접 가보면서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갖게됐다”고 설명했다.
과학에 흥미가 많다고 해서 강문지양의 꿈이 과학자는 아니다. 강문지양의 현재 꿈은 외교관이지만 이 또한 정해진 것은 아니란다.
“과학교실에도 참여하고, 수학경시대회나 영어말하기대회에도 참가하면서 제일 잘하고, 제일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대한 강문지양의 중학교 1년생답지 않은 당찬 대답이다.
◇`신문보내기 캠페인` 참여 업체-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원자력연구소(소장 박창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기술 고도화를 통한 에너지 자립기반 구축을 위해 지난 1959년 설립됐다. 원자력연구소는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한국형 원자로 ‘하나로’ 설계 및 건설 △한국표준형원전(KSNP) 개발 등 국가 원자력 산업 발전에 굵직한 이정표를 남겨왔다.
원자련연구소는 해수의 담수화가 가능한 일체형 원자로 ‘스마트(SMART)’, 차세대 청정에너지 수소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초고온가스로(VHTR) 등 경제성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제4세대 원전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국책사업인 양성자가속기 연구센터 건설과 방사선 융합 기술(RFT)을 이용한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 임무도 수행하고 있다.
◇인터뷰-박창규 소장
“불과 50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이 오늘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은 우수한 인재들이 과학기술 각 분야에서 땀 흘린 결과입니다. 한국이 치열한 국제경쟁을 뚫고 21세기 세계를 이끄는 나라가 되느냐 역시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시험을 위한 공부에만 매달리지 말고 세상을 균형있게 보는 눈, 따뜻하면서도 분석적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힘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박창규 소장은 청소년들이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지식 창고를 활용해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호준기자@전자신문, newlevel@